박근혜 “이런 공천 … MB와 신뢰 깨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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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당 공천 심사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뒤 밖으로 나가고 있다. 오른쪽은 유정복 의원. [사진=강정현 기자]

지난 엿새간의 침묵은 12일 최후통첩을 위한 힘 모으기였던가.

한나라당 영남 지역 공천을 하루 앞둔 이날 박근혜 전 대표의 기자회견은 이명박 대통령 측을 향한 강도 높은 압박이자 경고였다. 이날 한 인터넷 언론이 보도한 ‘50% 물갈이 합의설’이 박 전 대표의 말문을 여는 계기가 됐다. 박 전 대표는 공천 이후 당내 화합의 어려움과 이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까지 거론하며 배수진을 쳤다.

그는 “이렇게 잘못된 공천으로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당이 화합하기 힘든 상황이 올 것”이라고 했다. 또 “이 대통령과 분명히 기준을 갖고 공정하게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런데 국민이 공정하게 되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신뢰는 깨진 것 아니겠느냐”고 몰아쳤다. 그러면서 정치발전을 거론했다. 그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처음 제대로 한 경선에서 내가 깨끗하게 승복한 것도 정치발전을 위해 했던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크게 발전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잘못된 공천으로 다 잃어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발언이 최후통첩으로 해석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목표로 세운 ‘안정적 과반 여당’ 목표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내에선 “공천에 대한 불만으로 박 전 대표가 탈당하거나 탈당하지 않아도 총선에서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안정 의석 확보 목표에 빨간 불이 켜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 치른 대부분의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인사는 “선거가 끝난 뒤에라도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여야 구조가 뒤바뀔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까지 말했다.

친이계 인사들은 경계했다. 우선 박 전 대표가 치고 나온 계기가 된 ‘50% 물갈이 합의설’부터 잠재우려 애썼다. 박 전 대표가 책임질 당사자로 지목한 이방호 사무총장은 박 전 대표의 발언이 끝난 지 두 시간 만에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 섰다. 공천 기간 내내 언론과 접촉을 피했던 그다. 이 총장은 “공천이 시작될 무렵 (박측) 유정복 의원과 ‘정말 공정 공천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덕담 수준의 전화만 있었다”며 “그 후엔 ‘더 이상 얘기하면 오해될 수 있으니 전화를 안 하면 좋겠다’고 해 (전화)한 지 오래됐다”고 해명했다. “나와 (물갈이 합의를 위해) 만났다는 박측 인사가 누군지 나와 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친이 진영은 그러나 개혁 공천의 필요성은 강조했다. 혹여 박 전 대표가 측근 챙기기를 하는 게 아닌가 의심도 했다. 한 친이 의원은 “공천이 국민 눈높이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눈높이 맞추기는 없고 ‘내 사람’ 챙기기 모드로 들어갔다”고 비판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김무성·유승민·이혜훈 등 친박 측 핵심 3인에게 공천을 주자는 얘기를 그쪽에서 했지만 이미 조율할 수 있는 상황은 지났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박 전 대표의 발언이 영남 지역 공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 대통령 측으로서도 박 전 대표 측근들이 몰린 영남과 서울 강남 벨트에서 박 전 대표 측의 반발을 최소화할 방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글=이가영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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