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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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2부 불타는 땅 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24) 밤이 오면서마당에는 화톳불이 지펴졌다.
식당에서 지어온 주먹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나서 사람들은 셋으로 갈라졌다.저녁을 지킬 사람들과 밤을 샐 사람들,그리고 새벽에 경비를 맡을 사람들이었다.
하품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로보면서 불가에 앉아 있던 김씨가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아니,비 아냐!』 옆에 앉았던 이서방이 손바닥을 펴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습기 가득한 바람이 불어와 목덜미를 스치며 지나갔다.빗방울이 이마에 와 부딪쳤다.
『미운 년이 벌리고 덤빈다더니,젠장헐 거.이판에 무슨 놈의 비는 오고 지랄이람.』 투덜거리며 이서방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그러다 말겠지 뭘.』 『그나저나 도망친 사람들은 산 거여 죽은 거여.방파제 밑에서 고깃밥이나 되고 있는 거 아닌지….몇이서 한바퀴 돌아봐야 하는 거 아냐?』 죽창을 어깨에 기대놓고 앉아 있던 종길이가 눈을 흘끔거리면서 말했다.
『오지랖은 넓어 가지고 남의 집 사위 오거나 말거나…네 살 걱정이나 해라.』 『야가 이거 말허는 거 좀 보게.남의 집 사위라니.한솥밥을 먹어도 얼마를 먹었는데,네 누깔에는 그 사람들이 남의집 사위더냐? 싸가지 없는 놈.』 화를 내며 걸어가는 이서방을 보면서 김씨가 중얼중얼 혼잣말처럼 말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가 모르겠네.』 『내일쯤이면 풀어야하지 않겠나,덕호도 그런 말을 하던데.』 『푸는 거야 푸는 거지만,족제비도 낯짝이 있다고 무슨 명색이 있어야 할 거 아냐.
』 『사무실에서 붙잡아 놓고 돌려보내지 않는 사람들을 풀어주면,그러면 우리도 일 시작하겠다.뭐 그러겠다는 거 아니겠어.』 『그럴 수는 없지.』 김씨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막대기를 들어화톳불을 쑤셔댔다.
『제 발로 걸어간 사람들인데…왜놈들 하는 짓도 참 어이없다.
그 사람들을 잡아놓고 어쩌자는 거야.우리야 이제 도마에 오른 고긴데 칼을 무서워할까.떼과부가 나더라도 쉽게 풀고 말고 할 일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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