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살롱>方順元 변호사 부인 왕기랑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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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성법전 수석졸업,목포지청 판사로 법관생활 시작,서울법대교수,대법원판사.50여년 법조인생에 이만한 경력의 남편을 둔 아내,아니 웬만한 필부의 아내라도 누려보고픈 영화(榮華)에 그는 아예 눈길조차 준 적이 없는 듯 보였다.30년 넘 게 살아온 서교동 단층집을 다시 짓는 동안 반 년 남짓 임시로 거처할 곳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왕기랑(王奇娘.80)씨의 신림동 자택은 남편 방순원(方順元.82)변호사와 함께 살아온 60년 결혼생활의 재산이 청빈(淸貧)뿐임을 한눈에 보 여주고 있다.
별다른 세간없이 여기저기 낡고 헌 흔적만 고스란히 내보이는 마루를 지나 王씨내외가 거처하는 안방에 들어서면 함께 사는 큰아들이 월부로 사주었다는 넉자짜리 자개장과 화장대,유행지난 티크 서랍장,텔레비전,라디오,성경을 비롯한 책 몇 권이 살림살이의 전부다.
『목포에 부임하고 얼마안돼 소송당사자가 커다란 대구 한 마리를 사들고 왔어요.이 어른이 「나는 사법부의 심부름꾼이고 당신은 주인인데 주인이 심부름꾼에게 웬 선물이냐」며 돌려보냈지요.
그 소문이 났는지 그후론 그런 일이 전혀 없었어요 ….해방이 됐지요. 일본사람 밑에서 일했으니 얼마나 큰 죄인입니까.대문을걸어잠그고 이 어른을 다락에 숨겨놨는 데 아무도 문열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일제 때 땔감을 얻어 직접 리어카로나른다고 해서 「구루마 판사」로 불렸던 方변호사는 국가배상법 위헌판결로 유신정권의 미움을 사 대법관에서 물러나 변호사 개업후에도 소송보다 화해를 권한다고 해서 소송대리인 아닌 「소송만류인」「돈 버는 데 제일 자질없는 변호사」등으로 불렸다.
王씨는 그 덕에 겪은 신산스런 세월에 대한 원망은 커녕 남편과 함께 지켜온 청빈하고 강직한 양심이 고맙고 자랑스러울 뿐이다.작년에 方변호사가 「자랑스런 서울법대인」상과 함께 받은 미국행 비행기표 두 장도 王씨가 『내 분수에 맞지 않는다』며 선교사에게 줘버렸다.
그런 王씨도 남편때문에 크게 속이 상했던 때가 있었다.경성고녀(현 경기여고)졸업반이었던 王씨와 법전을 갓 졸업한 方변호사는 창경궁에서 처음 선을 봤다.
신부 본인은 「키가 작고 얼굴이 무섭게 생겼다」며 신랑감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어머니가 막내 사윗감을 워낙 마음에 들어하는 덕에 혼인을 했다.『고시합격전에 결혼했는 데 공부를 열심히 안하시는 거예요.법원서기인 동료들과 어울려 정 구나 치러다니니 여간 속이 상하지 않았지요.한번 책을 보면 금방 외곤 했지만 밤12시만 넘으면 딱 책장을 덮어 버리더라구요.』 인터뷰하는동안 아내곁을 지켰던 方변호사가 한마디 거든다.『이거 좀 창피한 얘긴 데,그때 내가 그랬어요.「공부는 하면 뭐해 당신만있으면 되는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方변호사가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아내를 늘 부축하고 다녀 젊은 사람들이 놀리곤 한다』며 웃음을 터뜨리자 王씨도 『두딸이 「엄마는 어떻게 아버지같은 남편을 만났느냐」고 부러워한다』고 맞장구 친다.4남2녀 가운데 맏사위만이 변호사로 장인 뒤를 잇고 있다.
〈李后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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