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에살고재산도키우고>파주 350평 농가주택 朴鍾純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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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거의 10년 차이로 만난 부인 이해경(李海京.25)씨와 결혼생활 5년째인 朴종순씨는 원당에서 사는 동안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가까운 자유로를 달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다.
전세금을 올려줄까, 아예 집을 사버릴까 고민하던 지난해 10월 그때에도 홧김에 자유로가 끝나는 곳까지 왔다가 「여기서 눌러 앉아 버릴까」했던게 그만 말이 씨가 돼 버렸다.마침 회사 업무관계로 아는 분이 자유로가 끝나는 곳에 괜찮은 마을이 있다며 장짓말을 소개해주었고 「구경이나 해보자」며 왔다가 정말 눌러앉은 것이다.
朴씨가 전재산 6천8백만원에 6백만원의 빚까지 얻어 마련한 대지 1백11평,텃밭 2백46평에 건평 20여평의 이 농가주택은 원래 이 마을 종가집이었다.
야트막한 뒷동산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그 사이로 어른 키만한 앵두나무 울타리 가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그러나 괜찮은 집터와 달리 집은 기둥을 빼고는 쓸만한게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낡았다.그런데도아내가 더 마음에 들어 사자고 졸랐다.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최소한 50평이상이 아니면 다시는 이사하지 않으려고 그랬거든요.텃밭 넓고 뒷동산도 있고,그러니 좋잖아요.집이야 새로 짓든지 수리하면 되는거구요.』 X세대 주부답게 생각도 행동도 시원시원한 李씨의 주도로 땅값만 쳐서 7천만원(평당 20만원)을 주고 샀다.원래 5개였던 방을 2개로 줄이고 나머지 3개는 거실.부엌.욕실로 개조했는데 재료만 사서여드레 낮밤을 꼬박 손수 일한 덕분 에 수리비는 4백만원밖에 들지 않았다.
전세금 2천2백만원 외에 집장만에 가장 보탬이 된 것은 5년동안 모은 저축 4천5백만원.이 돈을 모은 과정이 재미있다.요즘은 경기 탓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벌이가 괜찮을 때는 월순수입이 3백만원 정도까지 됐는데도 朴씨는 생활 비로 항상 1백만원만 갖다 주었다.
그러다 기분이 내키면 옷 사입으라고 20만원도 주고 30만원도 주고 그랬는데 벌이가 괜찮을 때도 집에 갖다 주는 돈은 항상 똑같은 것에 약이 오른 李씨가 그렇게 주는 돈을 3~5년짜리 장기적금이나 곗돈으로 몽땅 부어버렸다.그리고는 한달뒤 통장을 내놓고 「알아서 하라」고 엄포를 놓았다.그렇게 아내가 반강제로 들게 한 적금 덕분에 朴씨는 홧김에 집장만하는 호기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휴전선 바로 아래 마을이라고 하니까 다들 「그 먼곳까지…」라고 하지만요.수색에 있는 공장까지는 자유로를 따라 달리면 1시간도 걸리지 않거든요.그러니 출퇴근길에 스트레스가 다 풀려 버리죠 뭐.』 「이젠 나도 기댈 언덕이 있다」는 배짱이 생길 정도로 「믿는 구석」이 없었더라면 자유로를 달리는 것만으로 그렇게 스트레스가 풀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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