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임미경 옮김
문학동네, 512~536쪽(전4권), 각 권 1만2000원
책장을 여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황금빛으로 부서지는 태양, 그리고 교교히 흐르는 나일강. 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주위는 기원전 19세기 이집트로 변해 있다. 책은 그렇게 놀라우리만큼 깊이 빠져들도록 이끈다. 1997년 전세계를 이집트 열풍에 몰아넣었던 『람세스』의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사진)가 10년 만에 대작을 내놓았다.
배경은 파라오 세소스트리스 3세 치하의 이집트 중왕조 시대. 람세스 2세 시대와 더불어 고대 이집트 문명이 가장 융성했던 시기다. 『람세스』에서 권력의 암투를 헤치고 파라오로 성장하는 어린 왕자의 드라마를 그려냈던 작가는 이번에는 이집트 제국 번영의 비밀로 눈을 돌렸다.
이케르는 열다섯 살의 고아 소년이다. 시골마을에 사는 그는 노 서기관의 보살핌 아래 훌륭한 서기관이 되겠다는 꿈을 키운다. 이야기는 어느 날 밤 이케르가 괴한들에게 납치당하면서 시작된다. 영문도 모른 채 산 제물로 바쳐질 뻔한 그는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하고 모든 것이 파라오 세소스트리스 3세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케르는 오랜 모의 끝에 궁에 잠입하지만 자신을 제물로 바쳐 살해하려던 무리와 파라오가 전혀 무관함을 깨닫게 된다. 암살자 이케르를 마주한 파라오는 의외의 결정을 내린다. 그를 왕위계승자로 지목한 것. 가난한 시골소년이던 이케르는 그때부터 ‘오시리스의 신비’를 복원해내는 제국의 수호자로 거듭난다.
이집트 신화에서 오시리스는 저승의 왕이자 풍요의 신이다. 하늘의 신 누트의 아들인 그는 누이동생 이시스(이집트 신화 속 최고의 여신)와 결혼하고 이집트의 왕이 된다. 형의 지위를 노린 아우 세트(악의 신)는 오시리스를 살해한 뒤 14조각으로 토막 낸다. 아내 이시스는 세트의 아내인 네프티스와 함께 그의 시체 조각을 모아 부활 의식을 치른다. 새 생명을 얻은 오시리스는 지하세계의 왕이 된다. 작가는 이 신화에 주목하며 제국이 수천 년간 영속할 수 있었던 비밀이 ‘오시리스의 신비’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집트 덴데라 하토르신전 입구 ‘탄생의 방’ 벽면에 조각된 오시리스(右)와 이시스(左). [중앙포토]
책은 고대 이집트의 박물지(博物誌)라 해도 될 만큼 당시의 생활사를 정밀하게 그렸다. 총 20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대장정이 길게 느껴지지 않은 건 작가의 특장점인 예의 그 속도감 덕분이다. ‘신비’의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탓에 책 말미까지 가슴을 졸여야 한다는 점도 미리 알아두시길. 원제 『Les Mystres D’Osiris』.
이에스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