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암살 음모자가 이집트 왕위 계승 …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오시리스의 신비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임미경 옮김
문학동네, 512~536쪽(전4권), 각 권 1만2000원

책장을 여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황금빛으로 부서지는 태양, 그리고 교교히 흐르는 나일강. 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주위는 기원전 19세기 이집트로 변해 있다. 책은 그렇게 놀라우리만큼 깊이 빠져들도록 이끈다. 1997년 전세계를 이집트 열풍에 몰아넣었던 『람세스』의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사진)가 10년 만에 대작을 내놓았다.

배경은 파라오 세소스트리스 3세 치하의 이집트 중왕조 시대. 람세스 2세 시대와 더불어 고대 이집트 문명이 가장 융성했던 시기다. 『람세스』에서 권력의 암투를 헤치고 파라오로 성장하는 어린 왕자의 드라마를 그려냈던 작가는 이번에는 이집트 제국 번영의 비밀로 눈을 돌렸다.

이케르는 열다섯 살의 고아 소년이다. 시골마을에 사는 그는 노 서기관의 보살핌 아래 훌륭한 서기관이 되겠다는 꿈을 키운다. 이야기는 어느 날 밤 이케르가 괴한들에게 납치당하면서 시작된다. 영문도 모른 채 산 제물로 바쳐질 뻔한 그는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하고 모든 것이 파라오 세소스트리스 3세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날부터 복수를 다짐한 이케르는 반란 세력에 가담해 파라오 암살 계획에 동참한다. 한편 파라오는 이집트의 번영을 상징하는 생명의 나무, ‘오시리스의 아카시아’가 말라 죽어가 고민에 빠져있다. ‘예언자’를 자처하는 피지배민족 지도자가 파라오 체제에 도전해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케르는 오랜 모의 끝에 궁에 잠입하지만 자신을 제물로 바쳐 살해하려던 무리와 파라오가 전혀 무관함을 깨닫게 된다. 암살자 이케르를 마주한 파라오는 의외의 결정을 내린다. 그를 왕위계승자로 지목한 것. 가난한 시골소년이던 이케르는 그때부터 ‘오시리스의 신비’를 복원해내는 제국의 수호자로 거듭난다.

이집트 신화에서 오시리스는 저승의 왕이자 풍요의 신이다. 하늘의 신 누트의 아들인 그는 누이동생 이시스(이집트 신화 속 최고의 여신)와 결혼하고 이집트의 왕이 된다. 형의 지위를 노린 아우 세트(악의 신)는 오시리스를 살해한 뒤 14조각으로 토막 낸다. 아내 이시스는 세트의 아내인 네프티스와 함께 그의 시체 조각을 모아 부활 의식을 치른다. 새 생명을 얻은 오시리스는 지하세계의 왕이 된다. 작가는 이 신화에 주목하며 제국이 수천 년간 영속할 수 있었던 비밀이 ‘오시리스의 신비’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집트 덴데라 하토르신전 입구 ‘탄생의 방’ 벽면에 조각된 오시리스(右)와 이시스(左). [중앙포토]

『람세스』로 1300만 독자를 사로잡았던 생생한 역사 복원과 정교한 풍속 묘사는 이번 책에서도 그대로 구현됐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나일강, 주기적인 강물의 범람과 그로 인해 형성된 검고 기름진 흙, 그 위에서 부지런히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 바삐 오가며 곡물과 도기를 실어나르는 무역선, 이집트의 음식 문화와 탁월한 의술, 서기관 양성 학교와 군사훈련 모습까지….

책은 고대 이집트의 박물지(博物誌)라 해도 될 만큼 당시의 생활사를 정밀하게 그렸다. 총 20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대장정이 길게 느껴지지 않은 건 작가의 특장점인 예의 그 속도감 덕분이다. ‘신비’의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탓에 책 말미까지 가슴을 졸여야 한다는 점도 미리 알아두시길. 원제 『Les Mystres D’Osiris』.

이에스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