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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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술 좋아하는 이, 친구 좋아하는 사람들이 입에 자주 올리는 명구가 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시면 천 잔도 적다 할 것이요, 배포가 맞지 않는 이와 얘기를 나눈다면 반 마디 말도 많다 할 것이리(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 송(宋)대 유명 문인이자 관료였던 구양수(歐陽修)가 지은 시에 나온다.

요즘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투기’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투(投)라는 글자는 ‘서로 합쳐진다’는 뜻을 지녔다. 기(機)는 ‘틀’이라는 뜻을 간직한 글자다. 불교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의 타고난 능력 크기를 얘기할 때 사용하는 근기(根機)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투기라는 말은 결국 서로의 틀과 근간이 맞아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불가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처의 가르침에 끝까지 자신을 던지는 행위라는 뜻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본디 괜찮은 뜻으로 사용되던 이 단어는 나중에 그 의미가 달라진다. ‘기회를 틈타 이익을 거두려는 행위’로 바뀐다. 자신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 몸을 날린다? 그만큼 이익에 민감해 눈치 빠르게 행동하는 것을 이름이다.

시장에서 투기와 투자는 쓰임새가 다르다. 자신의 재화를 불리기 위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돈을 묻는 게 투자일 것이다. 그에 비해 투기는 단기적인 차익을 염두에 두고 폭리까지 노리는 경우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불법적인 행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취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이 말의 용례는 극히 부정적이다.

현대 중국에서도 투기라는 말의 뜻은 매우 좋지 않다. 이 단어 뒤에 교묘함을 취한다는 뜻의 ‘취차오(取巧)’를 갖다 붙인다. 결국 기회만 닿으면 이를 이용해 정당치 못한 이익까지 챙긴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의 새 정부 입각 예정자들의 투기 논란이 그치질 않는다. 재산증식을 위해 어떠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면 이들은 분명히 공직에 몸담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공직에 있으면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가 이미 투기 전력이 드러난 사람들을 물린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새 정부 인선을 향해 공세를 취하는 측도 나머지 대상자의 투자 행위까지 문제를 삼는 경우가 있어 개운찮다. 있는 자에 대한 없는 사람들의 불만에 편승한다면 그것도 일종의 투기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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