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셔틀콕 사랑' 세대간 벽까지 허물어

중앙일보

입력

"정발산 클럽 화이팅!" 정발산 배드민턴 클럽 내 여성 소모임 '여민사' 회원들이 손을 모으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힘찬 기합과 함께 셔틀콕이 허공을 가른다. 이마엔 어느새 구슬땀이 맺혔다. 민첩한 몸놀림이 프로선수 못지 않다.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마치자 활짝 웃으며 얘기를 주고 받는 품새가 영락 없는 이웃사촌이다. 배드민턴 사랑으로 똘똘 뭉친 동네사람들을 만났다.

정발산 배드민턴 클럽(회장 민영세)은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동호회다. 처음엔 동네 어르신 한 두 분이 모여 심심풀이로 셔틀콕을 주고받았다.
궂은 날에도 운동을 하기 위해 호주머니를 털어 비닐도 두르고 지붕도 만들고 하다보니 차츰 차츰 몸집이 커져갔다. 모임을 꾸린지 어느 덧 12년 째. 지금은 13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어엿한 동호회로 성장했다.

이 모임은 동호회라기보다 차라리 가족 공동체란 말이 와닿는다. 정기모임은 월 1회지만 기실은 거의 날마다 배드민턴을 즐기니 당연한 일이다. 십년지기도 허다하다. 클럽 내에서 여성 소모임인 ‘여민사(여우들의 민턴 사랑)’를 이끌고 있는 권인자(여·50)씨는 “매일 만나 운동하다보니 자연스레 서로간의 대소사를 챙기게 됐고 지금은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가 됐다”며 “대부분 회원들이 아내·남편·자녀들과 함께 운동하기 때문에 가족들끼리도 더욱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회원은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연령층이 모였다. 그렇다고 배드민턴 자체를 우습게 봤다간 큰 코 다친다. 막상 해보면 “2∼3년 구력으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고 회원들은 입을 모은다. 초보 회원의 경우 6개월 정도 코치에게 전문적인 레슨을 받아야 제대로 된 시합이 가능하단다.

민영세(42) 회장은 “배드민턴을 처음 접한 30대 때 70대 할머니에게 지고는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며 “운동량도 다른 종목에 뒤지지 않고 동료 간의 신뢰와 정을 키우며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배드민턴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예찬했다.

한남이(여·47)씨는 “중학교 때 배드민턴부 활동을 했고 3년 전에 정발산동으로 이사오면서 다시 시작했는데 역시 운동 중 최고”라며 “체중조절에도 이만한 게 없고 혈압이 높았는데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경화(여·41)씨도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시작한지 1년 반쯤 지났는데 재밌게 운동하면서 5㎏이나 뺐다”며 “우리 클럽에는 뚱뚱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너스레를 피웠다.

노인 건강유지는 물론 세대간의 벽을 허무는데도 배드민턴이 한몫 했다. 처음엔 채 5분도 라켓을 휘두르기 어려웠다던 신이주(74)씨. 지금은 20분은 거뜬히 셔틀콕을 날린다. 신씨는 “딸 권유로 2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폐활량도 커지고 입맛도 좋아져 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고 뛰다보니 훨씬 젊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발산 배드민턴 클럽의 회원은 꾸준히 느는 추세다. 한번 배드민턴의 매력에 빠지면 가족들 손을 이끌고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게 회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회원이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조건은 없다. 좋은 이웃사촌을 만나 신나게 즐기겠다는 마음가짐 하나면 충분하다.

프리미엄 이경석 기자 yiks@joongang.co.kr
사진=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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