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비협조적인 민주당, 서두르는 당선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새 정부 출범이 파행을 겪는 것은 이명박 당선인이나 통합민주당 모두의 잘못이다. 당선인은 절차를 어기며 너무 서두르고 있다. 통합민주당은 국민이 선택한 정부의 새 출발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읽지 못하고 있다. 양측의 미숙함과 섣부른 오기 속에서 새 시대의 분위기가 퇴색되고 있으니 국민의 마음이 편칠 않다.

당선인은 협상이 진행 중인데도 서둘러 장관 후보 15인을 발표했다. 하루이틀 더 기다린다고 국정이 큰일 날 일도 아닌데 그렇게 앞질러 갔다. 당선인은 후보들과 곧바로 밤에 워크숍을 가졌는데 이는 국회법·인사청문회법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국회의 인사청문이 끝나야 비로소 장관이 된다. 청문 과정에서 어떤 하자가 나올지, 국회가 어떤 청문보고서를 채택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마치 내정한 이들이 바로 장관이 된 것처럼 워크숍을 하는 것은 국회와의 협조를 경시하는 것이다. 늦지 않게 내각을 구성해 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은 당선인의 충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며칠 일찍 시작하는 것보다 절차를 지키며 여야 간 합의 속에 새 정부를 출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당선인과 비서실·인수위는 하루빨리 국민에게 ‘일하는 정부’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이제 한번 숨을 크게 쉴 때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손학규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은 흥정이 아니라 역사를 쳐다봐야 한다. 당선인 측에서 통일부와 여성가족부를 존치시키는 쪽으로 생각을 고쳤다면 그 정도 선에서 당선인의 조각(組閣) 의지를 배려해 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해양수산부의 존치 여부를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당선인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당선인이 ‘작은 정부’로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볼 각오라면 민주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그를 도와주는 것이 정도다. 해양수산부를 없애 심각한 부작용이 드러난다면 그때 가서 다시 조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당선인이 뛰어보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