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역사] 15. 청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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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필자가 서울대 예과 재학시절 학생들을 가르쳤던 강원도 원주 흥업면 사제리 육민관중·고교.

시커먼 연기를 내뱉으며 달리던 기차가 만종(晩鐘)이라는 역에서 멎었다. 둘러보니 철교와 조그만 역사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김원식이 앞장섰다. 야트막한 산 사이의 논두렁 길로 접어들었다. 누가 먼저 부르기 시작했던가! "원수와 싸우다 죽은 우리의 주검을 슬퍼하지 말아라." 하늘과 산 사이에는 우리가 가는 길을 막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다. 그러나 목청을 높여 울부짖듯이 불렀다. "깃발을 덮어다오 붉은 깃발을. 그 밑에 죽음을 맹세한 깃발." 러시아혁명 때 적군이 행진하며 합창했을 '적기가(赤旗歌)'. 끓는 피의 청년들이 목이 쉬어라 불러댔을 노래. 곡이 좋았다. 혁명이 무엇인지 그런 건 상관 없다.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불렀을 뿐이다.

우리가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조국. 그것이 남북으로 갈리어 2대 이데올로기의 시험장이 되었단 말인가. 그래서 반탁이다 찬탁이다 싸움질인가.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누군가가 시작하자 곧 모두가 따라 불렀다. 일제시대 김천애(金天愛)가 부르고 다니던 노래. 그때 그것을 들으며 얼마나 울었던가.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을 그처럼 절묘하게 표현한 노래는 없었던 것 같다.

논바닥 한 복판에 커다란 창고같은 건물이 보였다. 짚으로 이은 것이다. 그 왼쪽에 커다란 고목이 나타났다. 마을이다. 몇 채 안 된다. 그러더니 키가 커다란 사나이가 나타나 두 손을 번쩍 들고 환영해 주었다. 우리를 초대한 홍범희씨다.

"먼 길 오시느라 모두 수고하셨어요. 이 집에서 며칠간 푹 쉬시면서 좋은 이야기 좀 나누십시다."

몇 백년은 됨직한 고목 밑에 공회당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앞에는 졸졸 흘러가는 맑은 물이 있다.

"홍선생님은 혹…" 하고 내가 나섰다.

"임꺽정을 쓰신 홍명희(洪命熹)선생하고 집안간은 아니신지요?"

"맞습니다. 괴산하고 깊은 인연이 있지요. 우리 집사람도 거기서 시집 온걸요." 김원식이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했다.

"평안도에서 온 시인 안현우, 함흥에서 온 한영철, 괴산이 고향인데 평안도 가서 살다온 김상경, 진주에서 온 구평회, 이 사람은 함경도 태생 원봉호(元鳳鎬), 이 사람은 괴산군 청안에서 태어난 한운사, 나이를 가장 많이 먹어 형님 대접을 받지요. 모두 일기당천입니다."

"들어가" 하고 홍선생은 공회당을 가리켰다.

"잠깐!" 하고 내가 나섰다.

"우린 지금 온갖 잡스러운 것을 뒤집어쓰고 더럽혀진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이야. 저기 맑은 물이 흐르는데, 모두 얼굴 때 벗기고 꼬랑내 나는 발 씻고, 그리고 들어가자."

함성이 올랐다. 태고 적부터 고요하기만 했던 이 마을에 처음으로 울려퍼진 젊은 인간들의 함성이었을 것이다.

한운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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