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한 이명박 “장관 빼고 수석만 워크숍 참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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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인이 15일 서울 통의동 집무실에서 모하메드 얄샤이바니 두바이 투자공사 사장을 접견하던 도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5일 2시간30분 만에 거둬들이긴 했지만 ‘조각 명단 발표’란 초강수를 내보였다. 정권 인수 작업을 위한 16일 워크숍에 국무위원 내정자들을 참석시키는 형식으로였다.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이 결렬 위기로 치닫는 가운데 나온 수였다. 당연히 통합신당은 ‘불법’이라고 반발했다. 이 당선인 측이 곧 “우리로선 절박하지만 협상에 장애가 될까 봐 16일에는 하지 않기로 했다. 17일에는 할 수도 있다”(주호영 당선인 대변인)고 물러섰지만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이 당선인의 의지와 고집이 드러난 대목이다.

이 당선인은 이날 오전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만나서도 분명한 입장을 전달했다. 그는 “국민이 우리의 충정을 알아 주길 바란다”며 “작은 정부로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려고 하는데 부처가 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쟁점인 해양수산부와 여성가족부의 유지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힌 것이다. 여성가족부에 대해선 그나마 장관급인 ‘양성평등위’로 유지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 당선인의 이런 입장은 근본적으로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향한 오랜 소신 때문이다. “더 욕심 낼 수 있었는데 헌법에 국무위원이 15명이 있어야 한다고 해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푸념했을 정도다. 이 당선인은 “장관급 조직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고 말하곤 했다.

그에겐 정부조직 개편안을 정치 논리로 푸는 데 대한 거부감도 있다고 한다. 총선을 앞뒀다고, 농어민과 여성이 반발한다고 해서 양보하라는 건 당리당략이라는 것이다. 한 측근은 “표 때문에 작은 정부를 포기하면 오히려 당선인이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모습을 통합신당이 쥐락펴락하려는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선진국의 경우 대통령(또는 총리)이 원하는 대로 정부를 꾸릴 수 있다는 점을 든다. 이 당선인 주변에선 “우리가 늘리겠다는 것도 아닌데 너무한다”는 말이 나온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원칙론을 얘기하는 측근들도 있다. 이 당선인과 가까운 한 인사는 “반발한다고 타협해 기본과 원칙이 흔들리면 향후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 정부가 정상적으로 출범하지 않으면 5년 내내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도 주변에선 나온다.

주호영 대변인은 “결렬 가능성이 커질수록 타결 가능성이 커지니 두고 보자”고 말했다. 이 당선인이 지난해의 경선 룰 파동 등 정치적 고비마다 상대방에게 양보했던 결단이 재연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에 대해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왔다”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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