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對美통상정책 일관성 지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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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이 왜 이러는가.세계무역기구(WTO)가 이제 막 걸음마를시작하고 있고,대미무역도 흑자는 커녕 나날이 적자를 보이고 있는 판에 미국이 왜 시장개방압력을 가하고 있는가.
만일 WTO가 출범했고 또 우리가 대미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므로 미국이 시장개방압력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해다. 미국이 WTO를 출범시키는 과정에서 우리에 대한 시장개방압력이 적었다면 그것은 WTO출범이 시장개방에 더 쉽다고 판단했기때문이었다.우리가 충분히 시장개방을 했다고 생각해서 미국이 다자간무역협상때 조용했던 것은 아니다.
무역불균형도 마찬가지다.우리가 대미흑자를 낼때는 우리시장이 닫혀있어 흑자를 본다고 하고,우리가 적자를 볼때는 우리의 국제경쟁력이 약해져서 적자를 본다고 한다.우리가 너무 시장개방을 해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시장이 미국보다 닫혀있는 동안은 무역흑자를 내건 적자를 내건 상관없이 시장개방압력은 계속된다고 가정하고 미국을 대해야된다.시장개방에 도움이 되면 협정이든,협력이든,압력이든,아니면호소든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게 미국이다.개별기 업의 해외진출에대통령까지 나서는 나라다.
최근의 대미 통상관계가 펼쳐지는 모양세를 보면서 몇가지 제언할 필요를 느낀다.
첫째,앞이 내다보이는 통상정책을 펴야한다.지금처럼 사안이 터질때마다,또는 꼭 미국이 문제를 삼아야 시장을 개방하는 임기응변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지금 식이면 국민은 국민대로 우리정부가 마치 미국을 위해 일한다는 인상을 갖기 쉽고,미국은 미국대로 우리정부의 대외경제정책을 믿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대미통상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통상정책을펴는 것부터 해야 한다.또 그것은 세계화된 나라로 탈바꿈하려는우리 노력의 일환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결국 대미통상관계는 미국과의 다른 경협관계속에서,나아가 우리가 전개하려는 더 커다란 대외협력관계의 틀속에서 펴야 할 것이다.아태경제협력체(APEC)는 왜 하는지,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왜 가입하려는지 등의 문제와 연결시켜 틀 을 짜야 한다는 말이다.
소시지 유통기한이니 자동차수입관세 같은 것이 대미관계 전체 또는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대외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그토록 집착해야할 사안인가 의심스럽다.
「우리 뒤를 봐줘야할 미국이 이럴수 있느냐」는 식의 감정적인대응은 우리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만 비치게 할 뿐이다.
둘째,지킬 자신이 있는 약속만 해야 한다.미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외국정부가 우리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 한다.뱉은 말을 되삼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WTO협상할때는 당사국끼리 둘이서만 따로 다시 이야기하자 하고,쌍무협상을 하자하면 여럿이 모인데서 다시 보자는 식으로,당장 「땀나는 자리 모면하기」에 바쁜 협상태도는 우리정책에 대한대외적 신뢰의 근저를 송두리째 흔들리게 하는 일 이다.
말로든 문서로든 지킬 수 없는 시장개방약속은 하지를 말고,한번 한 약속은 지키는 것이 외교의 ABC아닌가.
셋째,대미통상문제도 되도록이면 WTO체제속에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힘없는 나라의 이익도 보호해 준다는 약속을 믿고 쌀시장까지 열어가면서 애써 출범시킨 WTO체제 아니었던가.아무리 상대가 미국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부당하다고 생각하 는 요구를 해오면 공연히 「없는 힘 억지로 쓰려」하지 말고 WTO의 분쟁해결기구를 통해 당당하게 우리의 입장을 펼줄 알아야 한다.
미국의 압력으로 시장이 열리면 국민은 이를 고운 눈으로 보지않을 것이다.그러나 같은 사안도 WTO를 통한 합의에 따라 시장이 열리고 제도가 바뀌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국민이 성숙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정수 본사경제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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