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 코앞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 싫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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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첫날인 지난 6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바삐 재촉하는 인파 행렬 사이로 귀에 익은 음악이 울려 퍼졌다. 남미 안데스 출신의 연주자가‘베사메무초’를 연주하자 사람들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흥겨운 남미의 리듬에 빠져들었다. 추운 날씨인데도 ‘야외 공연’의 열기는 뜨거웠다.

가족과 함께 연휴를 맞아 쇼핑 나왔다는 김민화(15)양은 “예전에는 어떤 음악인지 모르고 TV에서 ‘베사메무초’를 들었는데, 그 노래가 남미음악이라는 것을 오늘 알았다”면서 “음악이 매우 정열적”이라고 말했다. 또 지나다가 음악에 이끌려 공연 내내 자리를 지키던 정춘교(38)씨는 “라디오나 TV 등 방송을 통해 듣던 음악을 직접 현장에서 연주로 들으니 더욱 좋다”며 “서울역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런 공연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데스에서 온 인디오 출신 뮤지션은 강추위로 얼어붙은 몸과 손을 따뜻한 음료로 녹여가며 연주를 들려줬다. 이 날 공연은 지하철 공연 전문기획사인 ‘레일아트’(www.railart.org)가 기획한 것. 국내에서 활동 중인 대부분의 남미밴드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레일아트 관계자는 “지금은 한겨울의 추운 날씨 때문에 다른 계절보다 안데스 뮤지션들의 공연 횟수가 줄었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 다시 많은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데스 음악은 특유의 경쾌한 리듬을 타고 다소 슬픈 분위기의 선율이 매력이다. 잦은 외세의 침략, 오랜 식민지배 등 슬픈 역사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한과 애수, 슬픔이 녹아든 안데스 음악의 정서는 우리와 잘 맞다. 안데스 음악에 사용되는 악기는 팬플룻과 비슷한 삼포냐, 기타와 비슷한 차랑고, 피리의 일종인 케나 등. 여기에 타악기가 가세한다.

남미 밴드의 활약 덕분에 국내에도 ‘안데스 음악’팬이 많이 생겼다. 공연 내내 자리를 지키며 연주자와도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혹시 가족이 아닌가 물었더니 오랜 팬이라고 했다. 2년 전 관광열차를 운행하고 있던 남편의 소개로 안데스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을 알게 되었다는 최수미(27)씨는 명절 전날인데도 불구하고 공연 현장에 나와 응원을 계속했다.

최씨는 “안데스 음악은 내용은 구슬프지만 열정적이며 즐거운 리듬과 함께한다는 역설이 매력적이다”며 안데스 음악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또 “국내에서 활동 중인 안데스 뮤지션들의 까페나 블로그에는 수천 명의 팬이 활동하고 있으며, 안데스 음악에 대한 자료를 공유하고 음악에 대한 진솔한 얘기들을 나누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안데스 뮤지션은 라파엘(cafe.daum.net/RAFAEL)과 올란도처럼 솔로로 활동하기도 하고 로스 안데스(cafe.daum.net/andesmusic), 시사이(www.sisaykorea.co.kr), 잉카 엠파이어(cafe.daum.net/incaempire) 등 그룹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8개팀 정도의 중남미 뮤지션들은 지하철 예술무대 외에도 공연 기획사들의 섭외로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각종 축제나 행사, 직장인들을 위한 공연, 상설 공연 무대 등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페루 출신의 R씨는“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야외공연하기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많은 뮤지션들이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고국으로 돌아가서 쉬고 3월에 다시 입국한다. 이들은 한국에 한국인 전담매니저를 두고 활동하는데 C4(단기취업비자)나 E6(예술흥행비자)를 통해 한국에 들어와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거나 비자를 갱신해 계속 활동하기도 한다.

R씨는 “코앞에서 연주를 지켜보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가장 싫다”며 야외 무료공연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또한 공연에 필요한 무거운 장비들을 손수 가져다가 설치하고 정리해야 하는 점 역시 힘든 점에 속한다. 공연 말고 다른 하는 일은 없느냐는 질문에 “1년에 1장 정도의 앨범을 발표하는데 음반작업과 공연 준비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벅차다”고 대답했다. 특히 안데스 음악의 경우 순간적인 폐활량을 요구하는 악기와 노래가 많아서 공연준비를 하는데 많은 더욱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ㆍ사진=장미 대학생 인턴기자(연세대 정치외교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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