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맞붙은 사내들의 비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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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18면

아비규환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외세의 침입, 조정의 부패, 관료들의 학정에 더해진 ‘태평천국의 난’으로 어지럽던 19세기 중엽의 중국에서는 생명을 부지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명장

치열한 전투에서 홀로 살아남은 방청운(이연걸)은 도적떼의 우두머리인 조이호(유덕화)·강오양(금성무)과 형제의 의를 맺고 난세의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다시 청나라 군대에 들어가 마을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을 돈과 식량을 얻으려는 것이다.

세 형제는 혼자 살아남는 것보다는 함께 죽는다는 기세로 적을 물리치고 성을 함락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세상은 단지 전투에서 이기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맨주먹뿐인 그들은, 애초에 지는 싸움을 시작했던 것이다.

‘첨밀밀’을 만들었던 진가신 감독은 최근 중국 영화의 유행인 스펙터클한 무협 혹은 역사영화에 도전한다. ‘동방불패’의 정소동이 무술 감독으로 참여해 만들어낸 사실적인 액션 장면은 황홀할 정도로 기백이 넘친다.

섬세하고 치밀한 진가신의 연출력 역시 빛을 발휘한다. 목숨을 건 형제의 신뢰가 무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갈등하는 그들의 얼굴을 진가신은 냉철하게 잡아낸다. 진가신은 아찔한 순간의 절망과 슬픔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명장’은 다정함이 어울리지 않는 영화다. 모든 것은 이미 예정된 비극을 향해서 달려가고, 진가신은 그 비극의 리듬을 탁월하게 조율하면서 지독한 여운을 남겨준다. 그들은 명장이 아니라 그저 장기판의 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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