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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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제2부 불타는 땅 비내리는 나가사키(5)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노무라의 손에는 보퉁이 하나가 들려 있었다.모포를 깔고 엎드려 있던 화순이 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아침에 끌려나간 종길은 그대로 풀려났는지,지하 방에는 화순이 혼자였다.
노무라가 옆에 와 앉았다.
『좀 어떠냐?』 그 말에는 대답이 없이 몸을 일으키려던 화순이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며 팔로 바닥을 짚은 채 이를 악물었다.노무라가 다가앉으며 화순을 껴안듯 일으켜 앉혔다.
벽에 몸을 기대며 화순은 피멍이 든 눈으로 멍하니 노무라를 바라보았다.노무라가 보퉁이를 풀었다.여자 옷이었다.
『갈아입어라.네 옷이다.』 화순의 눈이 물끄러미 옷을 내려다본다.그리고 그것이 자기 옷임을 안다.부끄럼을 타듯 노무라가 고개를 돌렸다.
『유곽에 가서 가지고 왔다.』 옷과 노무라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화순이 말했다.
『나한테 이렇게 해서 노무라상에게도 이로울 게 없을 텐데.남의 사정 봐주다가 애 밴다는 소리가 있소.』 『나가 있을 테니,그 피묻은 옷이나 좀 갈아입어라.내가 보기 싫어서 그런다.』『나갈 거 없어.거기 있어도 돼.』 『그럼 돌아서 있지.』 『돌아설 일이 아니고… 팔을 못 쓰겠으니,기왕이면 좀 입혀 주면좋겠네.』 노무라가 화순의 말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리는 사이 몸을 움지럭거리며 화순이 겉옷을 벗었다.노무라가 속옷을 꺼내주며 고개를 돌렸다.겨우 아랫도리의 속옷을 바꿔입은 화순이 발끝으로 옷보퉁이를 끌어당겼다.노무라가 옷을 꺼내며 말했다. 『큰 일이구나.이러다가 죽으면 무슨 꼴이냐.』 『이렇게죽으나,저렇게 죽으나.』 조심스레 다리를 들어올리기도 하고 화순을 껴안듯하며 옷에 팔을 끼워넣기도 하면서 노무라는 그녀에게옷을 입혀주었다.그리고 나서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돌려묶어주는 사이,화순은 몇 번 소리를 지르게 아픈 것을 이를 악물며 참 았다.
옷을 다 갈아입혀 놓고 나서 노무라가 화순을 보며 말했다.
『이제 좀 옛날 티가 나네,사람같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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