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단총 받침대로 개발 피사체의 흔들림 막아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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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39면

사진에 취미가 있다면 한 번쯤 눈 돌리게 되는 물건이 있다. 흔들리지 않게 사진 찍어주는 삼각대다. 디카 사용자들은 불만 1순위로 흔들림을 꼽는다. 열심히 찍은 사진이 못쓰게 되었을 때, 대부분은 제 머리를 쥐어박으며 사진실력을 자학한다.

윤광준의 생활 명품 이야기-짓조 삼각대

어둡거나 모든 사물을 또렷하게 찍고 싶을 때 삼각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진용품 가운데 사용빈도가 가장 높고 질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한 도구다. 이 분야 최고의 명품이라 할 수 있는 짓조(gitzo)는 90년의 역사를 지닌 신뢰할 만한 브랜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짓조의 활약은 대단했다. 당시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던 프랑스의 기관단총엔 짓조의 받침대가 사용되었다. 견고한 받침대는 화기의 명중률을 대폭 높인다. 전쟁과 함께 이름을 높였던 짓조가 전후 평화산업의 대체로 촬영기재용 삼각대를 만들게 되니, 그 이력이 재미있다.

프랑스 영화의 전통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고, 영화 촬영기재와 사진용 삼각대로 시선을 옮긴 짓조의 선택은 너무나 당연하다. 전쟁에서 출발, 현대의 영상 문화와 맞닿으며 삼각대 최고의 명품으로 자리 잡은 짓조의 저력. 기관단총과 카메라, 이 둘은 묘하게도 쏘는 행위(슈팅)란 지점에서 아이러니를 공유한다.

내 사진 이력은 짓조와 함께했다. 몇 대의 삼각대를 갈아치우며 성장한 사진실력은 밥 벌어 먹는 수준이 됐다. 짓조를 메고 이 나라의 자연 생태를 기록했던 10년은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흑산도의 거친 암벽에서 괭이갈매기를 찍던 순간의 긴장과 한라산 백록담의 신령함을 홀릴 듯한 농무 속에서 보게 했던 것도 짓조다. 작지 않은 부피와 무게의 삼각대는 가쁜 숨을 내쉰 만큼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았다. 이제 짓조가 없는 생태 촬영은 생각할 수도 없다.

최신형 짓조는 신소재를 채택해 무게와 부피를 대폭 줄였지만 난 여전히 클래식 모델이 더 좋다. 신형은 알루미늄 다리에 칠해진 회색의 질감을 대치하지 못한다. 짓조의 색깔은 프로의 감성을 대변한다. 그 견고한 도료의 특성과 질감은 바로 전장을 누비던 자질을 쏙 빼닮았으니까.

요즘 새로 나온 자동차 광고에 어느 사진가의 모습이 나온다. 내 눈엔 짓조만 보인다. 세계적 명장의 가치가 짓조로 인해 몇 배나 증폭되고 있는 현장이다.


윤광준씨는 사진가이자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체험과 취향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바꿔 이름난 명품 마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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