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결의안, 비자 면제 법안 미 의회 통과 ‘숨은 주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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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한국 외교는 미국 의회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하원에선 옛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비난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이 가결됐다. 1997년 처음 하원에 제출된 뒤 일곱 번의 시도 끝에 일본의 집요한 반대 로비를 뚫고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이어 상·하원에선 미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VWP)에 한국이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연 법안이 처리됐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쯤엔 한국 국민이 무비자(관광 또는 사업 목적에 한함)로 미국에 입국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런 소득을 올리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외교관이 있다. 김은석 공사참사관(사진·49·외시 14회)이다. 미 의회 담당인 그는 위안부 결의안 처리와 VWP법안 통과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정부의 근정포장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주미 한국대사관 측이 최근 밝혔다.

김 공사참사관은 위안부 결의안 처리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했다. 2006년 위안부 결의안 저지에 성공한 일본이 방심하던 2007년 1월 말 마이크 혼다 의원에게 결의안 발의를 부탁했고, 통과를 위해 풀뿌리 운동을 전개한 재미 한인 단체들과 혼다 의원 사이를 연결하면서 통과 처리의 모든 과정을 조율했다.

그럼에도 그는 철저히 자신을 감췄다. 한국 정부가 개입한다는 인상을 주면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외교 대결로 몰고 갈 것이고, 그 경우 미 하원이 부담을 느껴 처리를 보류할지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VWP와 관련해 김 공사참사관은 한국의 조기 가입을 촉구하는 내용의 법안과 서한 등을 만들어 미 의원 등에게 돌렸다. 한국이 VWP 가입자격이 있음을 적극 홍보하는 사이트도 만들고, 한·미 양국의 160여 개 단체가 회원으로 참여한 ‘한·미 VWP 연합’을 발족하는 데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김 공사참사관은 “할 일을 했을 뿐 달리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 요청을 사양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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