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문화>2.주차 신경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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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서울영등포구여의도동의 24평형대 소형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J아파트에 살고있는 주부 김은영(31)씨는 새벽마다 어김없이 울어대는 클랙슨소리에 잠을 깬다.주차공간이 좁아 오후9시 이후에는 통로가 막힐만큼 이중삼중으로 차를 세우다보니 차빼기 전쟁이일어나기 때문이다.반상회때마다 새벽에는 클랙슨을 울리지 말자고다짐하지만 성질급한 운전자들은 오늘도 이웃의 잠을 깨우고 있다.아파트에서 주민들의 신경전과 반목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해묵은 골칫거리중의 하나가 바로 주 차문제.신경전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비좁은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오른다. 과천 N백화점옆의 아파트단지는 주차장 입구에 「외부차량가해조치 이의제기 불가」라는 거대한 현수막을 내걸고 백화점 고객 등 외부차량을 막고 있다.얌체주차를 일삼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주차하면 가해할 수도 있고 여기에 항의 하지 말라」는 식의 고압적 자세는 주차문제를 둘러싼 집단 이기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최근 목동의 모아파트에서는 주민들 일부가 주차장에 집의 호수를 써놓고 자기집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장을 해와 『주차장은 공공의 재산이므로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는 관리실과의 공방전이 한창이다.
그러나 주차공간의 부족을 이웃과 사이좋게 해결한 사례들도 없지는 않다.영등포구문래동 현대아파트는 이웃 금성강서빌딩의 ㈜STM 직원들에게 낮 동안 주차장을 빌려준다.또 문래동 서울지검남부지청옆 국화아파트는 지청과 지검을 찾는 사람 들에게 주차장을 빌려주고 있다.
지난 연말 「공동주택백서」를 발표한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모임」은 『단지 주변의 편의 시설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단지내부 시설도 이웃과 공유한다는 기본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주말에만 이용하는 회사원 張모(34.
동작구사당동 W아파트)씨는 며칠전 운전석쪽의 문짝이 찌그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경비원은 『옆에 서있던 차가 빠져나간 뒤 문짝이 찌그러진 것으로 보아 차를 빼다가 문짝을 다친 것 같다』고 말했지만 같은 아파트의 옆차 주인은 『그 옆에 세운 일도없다』며 펄쩍 뛰었다.張씨는 『공동생활속에서는 남의 재산도 나의 재산처럼 귀중한 것이라는,유행가 가사처럼 「입장바꿔 생각」해보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梁善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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