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기자의영화?영화!] 최은희에서 김태희까지 … ‘여배우의 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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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해가 막 바뀌었습니다만, 2007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여배우의 계보를 훑어볼까 합니다. 2007년이 퍽 대단한 해였거든요. 여배우 최은희씨가 데뷔 60주년(1947년 ‘새로운 맹서’)을, 김지미씨가 50주년(57년 ‘황혼열차’)을, 윤정희씨가 40주년(67년 ‘청춘극장’)을 각각 맞았습니다.

이 공교로운 인연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연말에 열린 ‘영화배우 윤정희 데뷔 40주년 특별전’에서였지요. 행사를 마련한 팬카페 운영자 안규찬씨는 고전영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달랐습니다. 행사장에서 인사말을 통해 여기에 몇몇 항목을 더하더군요. 장미희씨의 출세작 ‘겨울여자’(77년)가 나온 지 30주년, 강수연씨가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87년‘씨받이’)을 받은 지 20주년, 그리고 ‘밀양’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씨가 스크린에 데뷔(97년 ‘접속’)한 지 10주년이라는 겁니다.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스타인지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특히 앞에 세 분은 저마다 최소 100편 이상의 출연작을 통해 당대의 스크린을 주름잡았지요. 다작(多作)이 보편적인 시대이기도 했습니다만 그 숱한 작품을 통해 그들이 쌓은 현장 경험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분량일 겁니다. 전반적인 제작 여건은 지금에 비해 열악했겠지요. 매니지먼트라는 말도, 코디네이터·메이크업아티스트 같은 도우미도 생소했을 겁니다.

누군가 ‘여배우의 영광과 멍에’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이들은 잠깐 은막을 빛내고 사라지는 대신 면면한 세월을 관객과 함께 지내왔습니다. 최은희씨는 고 신상옥 감독과 함께 북한에 억류돼 있던 시절에도 연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김지미씨는 제작자로도 활약했지요. 윤정희씨 역시 국내외 영화제 심사위원 등으로 꾸준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의 세월을 온전히 평가하자면 여배우가 아니라 대배우인 셈이지요.
 
이 계보의 끝자락쯤에 김태희(사진·左)·한예슬(右) 같은 최신 스타들을 떠올려 봅니다. 연말에 개봉한 이들의 영화는 차례로 흥행에 쓴맛을 봤습니다. 사실 흥행 성적을 두고 배우 탓을 할 건 아닙니다. 각각 겨우 두 번째, 첫 번째 스크린 주연입니다. 앞서 열거한 선배들과 비교하면 영화 경력에서는 이제 막 첫발을 뗀 아기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는 스타라는 거대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출발선에서는 단연 유리한 조건이어도, 결과적으로 지켜보는 이들의 한결 냉혹한 평가를 불러올 법한 요소지요. 영화가 아니라 CF나 드라마로, 외모나 연기 입문 이전의 이력으로 쌓아 올린 이미지이지만 관객의 기대는 이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뭐 달리 방법이 있겠습니까. 배우로서 이력을 충전하자면 이미지와 스스로 싸워 이기는 수밖에요. 면면한 여배우의 계보, 그 분투의 역사가 빛나는 2008년을 기대해 봅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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