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빅3’ 안 부러운 ‘작은 고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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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에버다임의 전병찬 대표가 이 회사가 만든 중장비 제품 앞에 서 있다. [사진=강욱현 이코노미스트 기자]

건설중장비 업체 에버다임의 10여 년을 되돌아보면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는 교훈을 새삼 절감한다. 대다수 기업이 수렁에 빠진 1997~98년 외환위기, 이를 슬기롭게 넘기며 회사를 한 단계 도약시킨 것이다. 전병찬(52) 대표는 “앞으로도 경영 환경을 면밀히 분석해 제대로 대응하면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에버다임은 국내 건설중장비 4위다. 그런데 머리 위에 현대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볼보건설기계코리아 같은 쟁쟁한 대기업들이 버티고 있으니 전업 중견기업으로는 단연 1위인 셈이다.

건설중장비는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의 대명사인지라 제품의 크기가 하나같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아파트나 빌딩 공사장 앞에 T자로 우뚝 서 있는 40~60m 높이의 타워 크레인, 20~50m 길이의 사다리를 펼치는 사다리 소방차, 집게나 드릴을 굴착기 끝에 기능별로 장착해 쓰는 7t짜리 어태치먼트, 빌딩을 지을 때 콘크리트를 수십m 높이까지 뿜어 올리는 콘크리트 펌프 트럭 등이다.

그렇지만 94년 창업 때는 자그마한 중고 장비 매매업소에 불과했다. 대우중공업 직원 7명이 퇴사해 총 2억원의 퇴직금을 톡톡 털어 넣어 사무실을 냈다.

회사 설립도 우연한 논의가 계기가 됐다. 헌 장비를 사주고 새 장비를 파는 영업 방식을 애용한 당시 대우중공업은 쌓여 가는 중고 장비 처리에 골머리를 앓았다. 해외 사례를 연구하려고 만든 TF팀이 몇 달 걸려 ‘중고 장비는 별도의 시장이 형성돼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냈다. 이를 받아본 경영진은 불쑥 “중고 장비 전문업체를 직접 세워 운영해 보라”고 권유했다. 팀원들도 ‘뭔가 될 것 같다’고 예감했다. 7명이 퇴사해 만든 회사가 에버다임의 전신인 한우건설기계였다.

창업 2~3년간은 그야말로 고물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매출은 100억, 200억원 착실히 늘어갔지만 마진이 박해 경상이익 1억~2억원 내기가 벅찼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씩 제조에 발을 들여놓았다. “수천만원, 수억원대의 물건을 팔아도 중고상은 중고상에 불과하다는 허탈감이 들었어요. 물건을 만들지 않고는 도약이 어렵겠다 싶었지요.” 전 대표는 97년 매출액이 500억원을 넘긴 것을 전환점으로 어태치먼트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바로 그해 11월 외환위기가 터졌다. 당시 신규 사업에 돈을 쏟은 회사들은 예외 없이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중고 장비를 판매하던 에버다임은 본업의 타격이 컸다.

하지만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을 바짝 차리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위기가 바로 기회’였던 것이다. 급전이 필요하거나 도산한 건설업체에서 좋은 장비가 헐값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 대표는 ‘판로만 찾으면 큰돈을 벌 수 있겠다’고 예감했다. 태국·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의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신흥 시장은 그때만 해도 끄떡없었다. 국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중고 장비를 헐값에 사서 중남미에 제값에 팔았다. 대개의 기업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한 98년, 에버다임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갔다. 경제가 소생할 기미를 보이자 97년 시작한 장비 제조업 사업에 가속 페달을 밟은 것이다. 적자를 무릅쓰고, 중고 장비 매매업에서 번 돈을 제조 기반 확충에 쏟아부었다.

이 과정에서도 외환위기는 도약의 여건을 만들어 줬다. 실직한 기술자가 널려 있었던 것이다. 전 대표는 “경제가 살아난다고 해서 제조업종의 기술직 일자리가 금세 회복되진 못했다”며 “이 덕분에 중소업체 입장에선 과분한 엔지니어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에버다임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뽐내는 유압기술은 이 회사 제품에 공통적으로 활용되는 핵심 노하우다.

에버다임은 창사 뒤 12년 만인 지난해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배수진을 치고 사표를 썼던 대우중공업 TF팀 멤버들도 큰돈을 벌었다. 당시 차장으로 퇴직해 3000만원을 투자한 전 대표는 현재 70억원대 주식 부자가 됐다. 2003년 코스닥에 상장한 이 회사의 주가는 근래 7000원대다.

이재광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 사진=강욱현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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