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사그라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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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화로의 불은 사위는 것이 그의 운명이다. 이 화롯불이 제 몫을 다하고 사위어 가면서 어릴 적 고향의 겨울밤은 깊어 갔다.

‘사위다’는 불이 사그라져서 재가 된다는 뜻으로 쓰인다. “불이 사그라져서”의 ‘사그라지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삭아서 없어지다’로 풀이돼 있다. 격한 감정이나 강한 기세가 약해져 없어지는 것을 이른다. 이런 의미로 ‘사그라들다’도 많이 쓰인다.

“제가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 같아요.” “검찰 수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년에도 신흥시장의 석유 수요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와 같이 사용하지만 모두 ‘사그라지지’로 바로잡아야 한다. 사전이 ‘사그라들다’를 ‘사그라지다’의 잘못이라고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그라들다’는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비슷한 형태의 ‘누그러들다/누그러지다’ ‘수그러들다/수그러지다’ ‘옴츠러들다/옴츠러지다’ ‘우그러들다/우그러지다’ ‘쭈그러들다/쭈그러지다’는 모두 표준어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이들과 견주어 보면 왜 ‘사그라들다’만 비표준어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사그라들다’는 ‘사그라지다’ 못지않게 많이 쓰인다. 이 말이 ‘사그라지다’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면 복수 표준어로 인정해 주는 게 좋다.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면 그 뉘앙스를 밝혀 뜻풀이를 해 줘야 할 것이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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