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눈] "평범한 사람도 짱 되는 세상" 外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 "평범한 사람도 짱 되는 세상"

'짱'은 지난해 최고의 인기 검색어다. 하루에도 수십개의 짱카페가 생긴다. 인터넷에서 얼짱들은 떴다 하면 잇따라 연예계에 발을 내딛는다.

좋든 싫든 짱은 이제 연예계부터 스포츠와 정치 등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코드를 형성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모든 것을 겉모습으로만 재단한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그렇게 우려만 할 것도 아니다.

우두머리란 뜻의 짱은 무엇인가를 특히 잘 하거나 남들보다 뛰어날 때 쓰는 단어다. 일등이나 최고라는 단어와 상통한다.

우리 사회엔 지금까지 성적이 뛰어나거나 바람직한 일을 했을 때만 일등을 주고 있다. '일등'이나 '최고'라는 단어를 쓰는 데 너무 인색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때 각종 '짱'은 기존의 일등 문화와는 양상이 다르다. 어떻게 보면 기존의 질서를 뒤엎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오로지 높은 곳에서 아래로 순위를 매기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순위 매기기를 하는 것이다.

위대하고 완벽한 사람들에게만 꼭 일등 칭호를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뒤에서의 일등도 엄연한 일등이다. 이렇게 볼 때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도 짱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공부에서 노상 2등만 하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고 외면하는 분야에서 홀로 꿋꿋이 나아가는 사람들도 모두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짱이 될 수 있다.

이서연 학생기자(대전 대덕고2)

*** "네티즌 평가 따라 울고 웃고"

"윤희야, 이 사진들 중에 어떤 게 가장 나아?"

'얼짱'을 지망하는 친구가 나에게 종종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귀찮은 내색을 하지 않고 가장 예쁘게 보이는 사진을 골라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입시를 앞둔 마당에 사진이나 찍어 인터넷에 올리느냐고 핀잔을 줄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 또래들에게 얼짱 지망은 열병처럼 번져 있다.

얼짱에 도전하려면 우선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포토샵에서 다시 작업해 성형한다. 손질한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면 네티즌의 평가가 따른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주인공이 얼짱이 된다.

얼짱뿐만 아니라 '몸짱'도 있다. 게다가 강도 수배자가 '강짱'에 오르며 1만명이 넘는 팬 카페가 생기는 일까지 벌어졌다. 누군가 그녀의 얼굴이 담긴 수배전단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나도 호기심에 그 카페에 가입해 강짱의 얼굴을 보니 긴 생머리에 예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단지 그 사진을 보며 "저렇게 예쁜데 범죄를 저질렀을 리 없다""발견하면 숨겨줄 것"이라는 등의 글을 남겼다.

'짱'열풍은 이렇듯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네티즌들로부터 심판받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문제다. "그것도 얼굴이냐"고 리플을 다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얼짱 열풍에 나도 열광했지만 이제 내 친구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충고해야겠다.

장윤희 학생기자(경기 경안고2)

*** "과학자들에게 짱 칭호 쓰자"

지난해 12월 26일부터 28일까지 고려대에서 과학 강연회가 열렸다. 우리나라의 첨단 과학분야를 이끌고 있는 여섯 분의 과학자가 번갈아가며 과학원리와 과학상식을 들려주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역정을 설명한 이윤우 총괄 대표이사, 인공생명의 원리를 강연한 윤송이 박사, 항공우주 개발의 미래를 짚어준 한국우주항공연구원 채연석 원장, 우주의 신비를 깨우쳐준 서울대 김희준 교수, 과학자의 길을 설파하신 서울대 황우석 교수 등이었다.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가 밤낮으로 땀 흘리는 모습은 강연을 통해 듣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줬다.

사람의 배아 줄기세포 복제 기법을 새롭게 개발해 난치병 치료의 길을 터놓은 황우석 교수를 포함한 이들 과학자에게 우리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짱'이란 칭호를 드리고 싶다.

'짱' 문화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기정사실이 됐다. 처음엔 커다란 문화적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지금은 무난하게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부정적인 면만으로 짱을 볼 필요는 없다.수배된 강도에게 짱 칭호를 주는 등 우려되는 바도 있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다.

과학 강연으로 이공계를 멀리하려는 청소년들에게 신선한 동기를 부여해준 과학자들을 우리 미래의 '짱' 모델로 삼고 싶다. 음지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짱들이 많을 때 우리 사회는 훨씬 건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소정 학생기자(서울 창문여고2)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