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히딩크’ 롯데 확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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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로이스터 롯데 신임 감독(左)이 26일 선수들이 훈련 중인 경남 김해의 상동구장을 찾아 노상수 2군 투수코치와 악수하고 있다. [김해=연합뉴스]

‘새로 배정된 라커에는 아직도 다른 선수의 이름이 그대로 붙어 있다. 나는 레드카펫을 밟고 환영받으며 여기에 온 것이 아니지 않나. 내가 믿을 것이라곤 더플백 속의 3루수용, 2루·유격수용, 외야수용 글러브 세 개뿐. 누가 부상으로 빠지거나 슬럼프를 겪어야 내게 기회가 온다. 매일 경기를 못 뛴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어떤 포지션도 잘 해낼 자신이 있다. 정확한 송구, 번트나 진루타로 팀이 이길 수 있게 돕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빛나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이런 내 모습이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게 한 이유인지 모르겠다’ .

 1987년 8월 28일자 뉴욕 타임스에 실린 제리 로이스터(55·롯데 감독)에 대한 기사를 로이스터의 독백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로이스터는 당시 35세의 나이로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됐다. 기사에는 메이저리그 16시즌 동안 6개 팀을 돌아다닌 ‘저니맨(journey man)’의 비애가 담겨 있다. 그러나 탄탄한 기본기와 ‘할 수 있다’는 근성으로 똘똘 뭉친 그만의 강점도 잘 드러난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외국인 감독에 오른 로이스터가 자신의 야구인생을 이끌었던 기본기와 근성을 앞세워 롯데의 개혁에 착수했다. 로이스터의 취임 첫마디도 “무엇보다 기본을 주문하고 싶다. 그리고 야구는 열정이다”라고 했다. 26일 롯데의 훈련 구장인 김해 상동 구장에서 열린 선수단과의 미팅에서다.

 로이스터가 이끄는 롯데는 끈끈한 팀 플레이를 바탕으로 탄탄한 수비, 뛰는 야구로 변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로이스터가 선수 때나 메이저·마이너 리그 감독 시절 강조한 것도 이 부분이었다. 올해 롯데에는 정수근·이승화·김주찬 등 발 빠른 선수가 많았으나 코칭스태프가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주문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수들 내부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작전을 편다”는 불만이 많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로이스터가 추구하는 변화의 방향은 일단 긍정적이다.

 메이저리그 전문가인 송재우 Xports 해설위원은 “내야 수비를 중시하고, 빠른 선수에겐 그린 라이트를 주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로이스터가 힘에 의존하는 미국식 야구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어서 한국적인 ‘스몰볼’에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이스터는 두 가지 벽을 넘어야 한다. 한국 야구에 대한 경험 부족을 극복하는 문제다. 현재는 친구인 바비 밸런타인 일본 지바 롯데 감독에게서 들은 정도가 전부다. 로이스터는 27일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롯데로부터 프로 8개팀 경기장면을 담은 DVD 20장을 처음 받았다. 또 하나, 열성 롯데팬이나 성적에 조바심 내는 구단을 계약기간 2년 안에 얼마나 만족시키느냐도 로이스터의 숙제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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