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회는 씹어야 제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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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27면

임진왜란 때 중국 군사가 우리나라에 머물며 사람들이 회(膾)를 먹는 것을 보고 ‘오랑캐 음식’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에서도 공자 시대에는 회를 먹었으나 11세기 송대 이후에는 먹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큰 전염병이 유행했고 그 원인을 날고기로 여겼기 때문인 것 같다. 원칙적으로 회는 육류와 생선의 날것을 말하는데, 우리는 조선시대 이후로 날것을 즐겨 왔다.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일본인은 육류의 날것은 먹지 않으면서 생선과 조개류 날것은 즐겨 먹지.”

“그건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불교의 영향으로 육류를 거의 먹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일본인들이 생선을 즐겨 먹게 된 것도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고요.”

“그런데 생선회를 먹는 방법에 있어서도 우리와 차이가 많잖아. 우리는 펄떡펄떡 살아있는 생선회가 좋다고 여기고 죽으면 맛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인은 활어를 잡아 저온에 보관했다 하루 정도 지나야 맛있다고 하지. 사나흘까지 보관했다가 먹기도 하고, 참치의 경우에는 겉에 곰팡이가 필 때까지 숙성시키기도 한다잖아.”

“생선이 살아있을 때는 감칠맛 성분인 이노신산이 아주 적지만 하루 정도 숙성시키면 증가해서 최대치에 이르고 이때 회를 먹으면 감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래요. 사나흘까지도 감칠맛이 유지된다고 하죠.”

“하지만 육질의 단단함은 줄어들잖아.”

“물론이죠. 활어를 잡으면 생선에 따라 다르지만 다섯 시간에서 열 시간 사이에는 사후강직 현상으로 육질이 더 단단해지지만 그 이후부터는 근육이 풀어지면서 씹는 맛이 떨어지죠. 바로 잡아 내는 활어보다는 근육이 수축되는 사후강직 상태의 생선회가 더 씹힘이 좋고 미약하게나마 이노신산도 증가하니 혀로 느끼는 맛도 훨씬 좋죠.”

“그러니까 우리는 생선회를 씹는 맛으로 먹고, 일본에서는 감칠맛으로 먹는다는 이야기네.”

실제로 우리가 선호하는 것은 광어·농어·도미·우럭 등과 같이 육질이 단단해서 씹히는 맛이 있는 흰 살 생선회다. 반면 일본에서는 참치·방어·연어 등 육질은 부드럽지만 혀로 맛을 즐길 수 있는 붉은 살 생선회를 좋아한다.

활어에 대한 집착도 강하지만 씹는 맛을 즐기기 때문인지 몇 년 전부터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싱싱회’(활어를 바로 잡아 포를 뜨고 저온상태에서 숙성, 유통시키는 생선회)라는 브랜드로 추진돼온 선어회 사업도 부진한 것 같다.

“고추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생선회를 겨자장과 함께 먹었다고 하잖아. 초고추장이 등장하고 상추에다 마늘에 고추까지 넣어 생선회를 싸 먹으면서 생선을 혀로 즐기기보다는 씹는 맛으로 먹게 되지 않았을까?”

“초고추장과 상추쌈도 그 나름의 맛이 있긴 한데 모든 것을 섞어버리니 강한 맛의 부재료들이 원재료인 회 자체의 맛을 느끼기 어렵게 만들기는 하죠.”
오래간만에 서울 이촌동에 있는 일식집 ‘열해’(02-793-1188)에 들렀다. 생선회를 최대 이틀까지 숙성시켜 내는 집으로 알려진 곳이다. 씹히는 맛도 살려내는 것을 보면 생선에 따라 숙성비결이 있는 모양이다.

오래전 어른과 함께 처음 왔다가 여러모로 맘에 들어 자주 들르게 됐다. 지금도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 손님이 더 많다. 세월 따라 고객과 같이 나이 들어가는 이곳의 정겨움이 좋다.


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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