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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신중해야 할 재산몰수 발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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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직자가 부정(不正)한 방법으로 얻은 재산을 토대로 증식한 재산도 몰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부정척결 의지에는 일단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비록 처벌은 받았다 하더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재산을 크게 증식시켜 처벌후 에도 떵떵거리고 살아갈 수 있게 되어있다면 그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며,법(法)에 구멍이 뚫려있다고 보기가 쉽다.또 그래서는 한탕주의의 유혹을 뿌리뽑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공직자에 대한 법적 처벌 역시 적법성(適法性)과 적정성(適正性)을 벗어나선 안된다.아울러 처벌의 강화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도 분명한인식이 있어야 한다.
우선 부정을 저지른 공직자가 그의 재산내역에 대해 범죄와 무관하다는 입증(立證)책임을 지우도록 하겠다는 구상은 형법(刑法)의 기본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위헌(違憲)의 소지마저 있다.
그 입증책임은 어디까지나 수사기관에 있어야 한다.
자칫하면 자신의 무죄(無罪)를 입증하지 못하면 유죄(有罪)라는 전근대적(前近代的)처벌주의를 되살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물론 우리가 부정한 방법으로 부풀린 재산을 추적,몰수하겠다는데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또 그 자체가 법에 어긋 난 것이라고보는 것도 아니다.다만 그 입증의 주체를 뒤바꿔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재산을 제3자에게 넘겼을 경우도분별이 필요하다.그 제3자가 그 재산이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것을 알고도 얻었다면 몰수가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불가능할 것이다.이것 역시 수사기관이 가려내야 한다.
아울러 정부의 구상에 대해서는 이런 의문도 제기된다.과연 현행 법규상의 처벌은 약한가 하는 것이다.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는 수뢰액이 5천만원이상일 때는 무기 또는 10년이상의 징역,1천만원이상일 때는 5년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또 형법에는 범죄의 대가(對價)로 취득한 물건(物件)에 대해서도 몰수를할 수 있게 규정돼 있다.몰수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동안 이를 철저히 시행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지 반드시 관련 법규가 미비돼있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
정부가 공직사회의 부정을 뿌리뽑기 위해 법규적 측면에서의 미비점을 검토하는 것까지는 좋다.그러나 처벌의 강화,더구나 무리한 법적 논리까지 동원해 문제를 법으로만 해결하겠다는 발상(發想)은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법적 대응은 필요조건 은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그 취지가 좋은 법이라도 적법성과 적정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면 당장은 국민감정에 맞을지 몰라도 결국은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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