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의 삶과 예술-현대예술이 버린 대중성 회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대량소비사회의 이미지를 작품으로 옮겨 순수지향의 현대예술을 뒤흔들었던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품만큼이나 기이한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湖巖갤러리에서 10월9일까지 열리는 대규모 앤디워홀전을 계기로 팝 아트를 완성했던 그의 삶과 예술을 소개한다. 〈편집자註〉 작가로서 워홀의 천재성은 사람들이 너무도 흔해빠진 나머지 『이런 것이 현실을 반영한다는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고 내던져둔 것에서 현대예술이 그려내야 할 현실의실체를 찾은데 있다.
사회학자들은 워홀이 살았던 시대를 「대량생산에 의한 대량소비사회」라고 이름지었지만 워홀은 자기시대의 핵심을 신비한 베일에싸여있는 대중문화 스타에게서 찾았다.
워홀의 일생을 관통한 스타에의 욕망은 그의 작품전개 곳곳에서노출되며 일반이 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가 된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스타를 동경하고 꿈꿨다.
워홀은 체코슬로바키아출신으로 미국 피츠버그로 건너와 힘든 일을 하면서도 자식세대에는 성공이 찾아올 것을 믿어의심치 않던 이민1세대 가장인 안드레이 워홀라의 세아들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색소결핍증과 신경질환을 앓아 가족들로부 터 과보호를받으며 성장한 워홀은 6세때부터 셜리 템플.미키 루니등 당시 영화와 TV스타들의 사인이 있는 사진을 즐겨 모았다.
대학을 마치고 뉴욕에 진출한 뒤에도 당시 유명한 TV토크쇼 진행자에게 1년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팬레터를 보내며 『나는언제 유명해지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원래 앤드루 워홀라였던 이름을 앤디 워홀로 바꾼 것도 뉴욕과같은 대도시에 나와 활동하기에는 워홀라라는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워홀의 성공은 피츠버그 카네기 인스티튜트를 마치고 상업미술작가로 뉴욕에 발을 내디디면서 시작됐다.광고그래픽.카드디자인.TV기상예보그림등 닥치는대로 일을 했던 워홀은 상업미술에 관해서만은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 미국그래픽아트협회로부터 몇차례 상을받으며 뉴욕 광고계에 이름을 드날렸다.
33세때 처음으로 순수미술에 관심을 기울여 배트맨.딕 트레이시.뽀빠이등의 만화를 소재로 몇몇 작품을 제작했으나 뉴욕 상업화랑으로부터 외면당하자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그러나 팝아트를 미술시장에 처음 소개한 레오 카스텔리화랑에서 로이 리히텐스타인의 작품이 팔리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다시 매달린 끝에 『캠벨수프깡통』작품을 제작,뉴욕미술계의 눈길을 끌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미국에서 기막히게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똑같은 콜라를 마신다는 점이다.대통령도 리즈 테일러도 더 좋은 콜라를 마실 수 없는 것이 미국의 매력이다.』 워홀은 대량생산에 따른 대량소비가 가져온 획일성과 현대사회의 스타를 교묘하게 연결시키며 성공의 대열에 들어선 자신 주위에 스타의 신화를 쌓았다.
매일 밤늦게까지 유명인사들을 불러 모아 파티를 열므로써 스타의 대열에 낀 자신을 즐겼던 워홀은 1968년에는 자신의 실험영화에 출연했던 한 여배우로부터 『그가 내 인생에 너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총탄세례를 받는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워홀은 은막의 스타이미지를 자기 그림속에 직접 그려넣는 한편1963년부터 72년까지는 영화에 빠져들어 수백편의 실험영화를제작했다.그 가운데는 자신이 동경했던 리즈 테일러와 공동출연한영화도 포함돼 있다.창백한 얼굴에 이상스런 염색가발을 쓴 모습으로 뉴욕미술계에 할리우드 스타처럼 나다녔던 워홀은 자기정체를숨겨 「신비함」으로 자신을 치장하기를 즐겼다.1987년 그가 담석증수술후 사망했을 때 신문등은 그가 한번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출생연도 때문에 부음기사 처리에 애를 먹기도 했다.
워홀은 사람들에게 『만일 당신이 내가 누구인지 알기를 원한다면 내 영화와 그림의 표면을 보라.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말하곤 했다.
이는 자신이 평생 작업테마로 매달린 대중문화의 허구적 이미지를 빗대 한 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자신의 작업이 현실에 대한의미부여보다는 현실문화를 지켜보는 관찰자의 역할에 충실하려 했다는 점을 분명히 암시한 말로 해석되고 있다.
〈尹哲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