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남북 정상회담] 정세현 전 장관·이수훈 위원장 특별 대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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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05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왼쪽)과 이수훈 동북아시대 위원장이 5일 2007 남북 정상회담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사진=신동연 기자]

길정우=6·15 공동선언이 나온 지 7년 만에 남북 정상 간 합의물이 나왔는데 그 의미부터 묻고 싶다.

"낮은 수준 남북연합 합의한 셈"

정세현=6·15선언은 첫 정상회담의 결과물이다. 원칙과 방향성을 담았다. 이번에는 실무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갔다. 남북 교류협력이 증진된 지난 7년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선언은 특히 3항부터 군사문제로 들어갔는데,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사회·경제·문화 교류에 걸맞은 군사 교류가 없다는 게 불만이었고, 그 때문에 퍼주기란 비난도 받았다. 5항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개발을 합의하고,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군사적 보장조치를 마련하기로 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 경제협력과 군사협력을 연계, 아니 융합해 선순환할 수밖에 없는 지원체계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길정우 중앙 M&B 대표

이수훈=이번 합의는 기본합의서 성격의 8개 항 아래 구체적 세부사항이 붙어 있는 이중구조로 돼 있다. 평화, 공동 번영, 북방경제, 동북아 경제공동체 등 여러 개념을 아우르는 포괄적 원칙 아래 구체적 합의가 들어가 있다. 그야말로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협정서가 나온 것이다. 남북 간 평화와 관련해선 육지에서의 긴장 완화·신뢰 구축과 해상에서의 평화가 있다. 이번에 비무장지대(DMZ) 안의 전방초소(GP)를 철수하는 문제는 잘 안 됐지만, 해주와 주변 수역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로 개발키로 합의해 평화와 남북 공동 번영의 틀을 닦아 놓았다고 본다.

길정우=경제 협력 분야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무엇인가.

이수훈=서해의 남포와 더불어 동해의 안변이 조선 분야 협력 지대로 포함된 것을 주목하고 싶다. 안변은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이미 지난봄 방북해 사업 경쟁력을 살펴봤다. 안변은 강원도 속초 바로 위에 있다. 연관 산업 발전을 통해 이 일대가 조선 산업 벨트로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안변은 우리가 준비해 간 의제인데, 북한이 받아들였다.

정세현=북한의 백두산 개방은 의미가 크다. 4일 김정일 위원장 주최 환송오찬에서 김 위원장은 자신의 맞은편 자리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앉게 했다. 현 회장 옆에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앉았다. 김 위원장은 큰소리로 "백두산 들쭉 술 먹고 싶은 사람들은 현 회장한테 잘 보여야 될 거요"라고 했다. "백두산 사업은 현대에 줘라"는 뜻 아니겠나. 그 말을 듣고 나중에 현 회장에게 "축하드린다"고 했더니 눈물을 글썽이더라.

길정우=이번 합의에 대해선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임기 말에 많은 합의 사항을 지킬 수 있느냐, 왜 비핵화 문제는 명확히 하지 않았느냐는 등의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세현=다음 정부에 부담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북 관계를 풀어나가는 초석을 놔준 것이라 생각한다. 남북 간 긴장 완화가 되지 않았는데, 핵문제 해결에 따라 한반도 평화체제가 합의돼 내려오면 우리가 어떻게 소화하나.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받을 수 있는 남북 간 그릇을 만든 게 이번 합의다.

이수훈=정상회담이 임기 말에 열리게 된 것은 북한 핵문제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북한의 비핵화 초기 조치를 담은) 6자회담 2·13 합의 도출 등으로 북핵 문제 흐름이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한 것이다. 환송오찬 때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나 "분위기가 좋을 때,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하자, 그는 "우리는 미국과 합의해 차근차근 잘해 나가고 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정세현=표현은 딱 한 문장(남북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한 것)이지만 충분히 이야기가 됐고 거기에 대해 김 위원장의 계획이라든가 생각을 얘기했지만 이번 선언에 줄줄이 늘어놓을 수도 없다. 정상회담 도중 김 위원장이 김계관 6자회담 대표를 불러 노 대통령에게 "같이 보고받자"며 2·13 합의 2단계 조치인 핵시설 불능화 합의를 설명하게 하고, 환송만찬 헤드테이블에 김계관과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나란히 앉힌 것은 남측에 비핵화 의지를 밝히려 한 것이 아니겠느냐. 나도 김계관에게 "핵시설 불능화 합의에서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시점이 분명하지 않다"고 했더니 "시비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불능화를 이행할 미국 주도 실무팀을 8일 들어오라 했는데 미국 측이 준비가 안 됐다고 11일 들어온다고 했다. 미국과 우리가 만족하면 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길정우=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할 여지를 남겼다는 우려도 있다.

이수훈=NLL은 합의문에 들어가 있지도 않다. 민간 선박의 해주 직항로 통과를 합의했다고 해서 NLL이 무력화됐다고 얘기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그동안 군사적인 긴장 완화 차원에서 다뤄온 NLL 문제를 평화 정착의 문제로 다룬 게 이번 서해평화협력지대 합의다.

정세현=NLL은 남북 간에 얼렁뚱땅 도둑질하듯 해치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유엔사령관이 그어놓은 선이고 정전체제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문제다. 평화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협의해 풀 문제다. 북한이 NLL 문제에 떼를 쓴 것은 동남아에서 들어오는 북한 선박이 백령도 위로 올라갔다 내려와 입항하는 불편과 낭비 때문이었다. 해주 강령반도에 공단을 만들고 남북이 해주 직항로를 이용하면 해결될 문제다.

길정우=종전선언의 주체와 관련해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로 돼 있다. 하나로 합의되지 않은 이유는.

정세현=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하노이, 올 9월 시드니에서 '남·북·미'3자를 거론하며 종전선언을 얘기했다. 우리 정부로선 한·미 관계를 고려해 3자를 넣었을 것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분쟁 당사자를 앉혀 놓고 자신이 조정하는 모양새를 원한다. 중요한 것은 3자냐 4자냐보다 ‘한반도 지역’에서 종전선언을 추진한다고 한 부분이다. 평화체제로 나가기 위한 첫 조치로서 그것을 한반도 지역에서 한다고 해놓은 것은 상징성 면에서나 실질적 면에서 의미가 크다.

이수훈=우리는 중국 입장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중국은 남북이 종전선언의 당사자가 되는 것도 크게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이번 정상회담 합의가 잘 이행되고 6자회담을 통해 북·미, 북·일 관계가 정상화되면 평화협정이 필요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정세현=맞다. 북·미가 '평화와 우호에 관한 조약'을 맺고 여기에 군사 협력 조항 몇 개만 더 넣으면 그걸로 (한반도 평화체제는) 끝날지도 모른다.
길정우=이번 합의가 잘 이행될 것으로 보이는가.

이수훈=노 대통령이 해주 특구를 제안했을 때 김 위원장은 국방위원회 고위 인사를 불러 "문제 없느냐"고 물었다. 해주에 북한 해군사령부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괜찮다"고 해서 합의가 이뤄졌다. 이행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상징적 장면이 아니겠는가. 김 위원장은 회담 당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만 배석시켰지만 회담장 밖에 주요 인사들을 대기시켜 놓았다고 들었다.

정세현=환송만찬 때 김 위원장이 향후 총리·국방장관 회담, 경제공동위원회의 대표가 될 김영일 총리, 노두철 경제부총리,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을 우리 측 해당 인사 곁에 앉힌 것은 합의 이행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2002년 경제시찰단을 이끌고 방한한 장성택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김 위원장의 매제)도 나왔다. 장성택이 안 보이던 시절 함께 안 보이던 대남 사업 부문의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더라.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길정우=이번 선언은 통일 문제를 별도의 항으로 다루지 않았다. 합의 내용이 통일 구도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궁금하다.

정세현=전체적 합의 내용은 낮은 수준의 남북 연합단계로 정의할 수 있다. 정상회담을 상설화하고, 총리회담을 만들었다. 그 아래 경제회담을 두고 총리회담과 조율하도록 했다. 국방장관회담은 인민무력부장이 국방위원장 직속이니만큼 어떻게 보면 내각보다 상위 개념이다. 국회회담 역시 통일헌법 기초 준비를 위한 남북평의회의 초보 단계로 봐야 한다. 향후 남북 공동 사무국이 탄생하고, 다른 기구를 지배할 정도가 되면 국가연합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이번 합의는 6·15 공동선언 2항(양측 통일안의 공통점을 인정하고 이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한다)을 토대로 구체적 기구를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북관계가 전면적 발전 단계로 들어가면 통일 또는 외교 전문가가 총리가 돼야 할 것이다. 통일부가 국무조정실 같은 기능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 장관급회담은 5월의 21차로 사실상 마감한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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