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에서 발견한 생활의 美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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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21면

김영수 작 ‘꽁치-충남 광천’, 2004

꽁치 일곱 마리가 나란히 누워 있다. 장바닥 어물전에 나온 꽁치가 손님을 기다린다. 닭발도 넉넉하고 말린 가자미도 푸짐하다. 색이 고운 여자 속옷이 좌판에 널려 있다. 단정하고 깔끔하고 어딘지 모르게 쿨하다. 현대미술의 ‘오브제’ 작품들을 찍은 사진이래도 믿겠다. 하지만 이들은 전시를 위해 진열된 재료들이 아니다. 시골 5일장에서 한갓지게 유통되는 것들에 카메라를 갖다 댔을 뿐이다. 생활 속 찰나의 장면을 확대했을 뿐인데도 프레임을 갖추니 또 다른 세상으로 보인다.

사진작가 김영수(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씨는 이름난 제품 전문 광고사진가였다.
광고사진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1980년대 그는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에게 상품과 관련된 시각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했다. 90년대 말 이후엔 음식사진 전문가로 변신했고, 올해로 22년째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당연히 광고의 논리에 충실한 사진만을 찍어왔다. 실물보다 멋지고 누가 봐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빳빳한 광택지에 화사하게 실리면 ‘때깔’이 남다른 그런 사진들 말이다.

그랬던 그의 시선이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광고주도 없고, 환상이니 소비니 하는 것들이 없는. 하지만 5일장에서 팔리고 있는 것들도 대형 마트나 TV 홈쇼핑 속 물건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당근과 꽁치와 오이가 인위적인 실내 조명을 벗어나 해사한 햇살 아래 빛날 뿐이다. 김씨는 그 자연의 자연스러움에 매료돼 지난 3년여 동안 거의 매주 전국 장터 86곳을 돌았다. 안식년이었던 지난 1년은 한 달에 열흘 이상 장터에서 살기도 했다.

20년 만에 처음 여는 개인전 ‘장을 보다’에는 재래식 스타일링에 대한 찬사가 배어난다. 이삼십 년을 사용해서 낡을 대로 낡은 그릇 위에 놓인 파와 처마에 걸린 셔츠, 푸른 비닐봉투 위에 놓인 꽁치는 그 자체로 멋스럽다. 굳이 ‘세팅’하지 않아도 좌판에 차곡차곡 쌓인 배는 생활 속 질서와 조형미를 숭고하게 드러낸다.

가장 소박하고 가장 원시적인 상황에서의 먹거리, 입을 거리가 이토록 예뻐 보인다니.

오랜 광고사진으로 다듬어진 김씨의 세련된 색감이 가능케 한 ‘생활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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