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7가] 절이 싫으면 떠나야, 아니 싸워야···메이저리그 단장들이 사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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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라이언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이 속담만큼 피고용자의 애환(哀歡)이 깃든 말도 없을 것입니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환보다 애가 많은 게 현실입니다. '수틀리면'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은 늘 매인 자의 몫이었으니까요. 역사도 그랬고 일상도 다반사입니다.

얼마 전 미네소타 트윈스 테리 라이언 단장이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그는 '스몰 마켓'에 돈 안 쓰는 '짠돌이'란 욕을 바가지로 먹는 구단주 밑에서 40세부터 13년간 구단 살림꾼(스카우트 부장으로 첫 고용된 것을 포함하면 21년)으로 충성을 다 바쳐 팀을 반석 위에 올려 놓은 '일개미'였습니다. 30개 팀 중 19위에 불과한 저예산으로 지난 5년간 4번이나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습니다.

그의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선수들과 동업자들로부터 그동안 치적에 대한 칭찬이 쏟아졌습니다. 그가 직접 뽑은 토리 헌터는 "만약 라이언에게 양키스 같은 팀 연봉이 주어졌다면 10배는 더 잘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고 했습니다. 같은 중부조의 시카고 화이트삭스 케니 윌리엄스 단장은 "일에 관한 한 그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열심이었고 탁월했다. 이 바닥에 있는 모든 단장들이 존경하고 인정한다. 그가 그리울 것이다"고 아쉬워 하며 "2010년 트윈스가 새 구장을 지으면 그의 이름을 갖다 붙여야 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AP 기자의 표현대로 그는 유니폼만 안 입었다 뿐이지 최근 트윈스의 성공에 단연 핵심 선수였습니다.

▶브라이언 캐시먼

그는 사임의 변으로 '염증'을 말했습니다. "이젠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다 시들해졌다. 단장이 그러면 안 되는데…. 올시즌 부진했지만(2000년 이후 처음으로 5할 이하 승률) 100승이나 100패를 했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이다.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결심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의 사임의 변에 고개를 젓습니다. 수입의 50% 이상을 선수 연봉에 투자 하지 않겠다는 구단의 완고한 긴축 경영에 오히려 염증을 느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분석입니다. 당장 올 시즌 후 헌터 내년 시즌 후 요한 산타나 등 그의 손 때가 묻은 주축 선수들이 줄줄이 자유계약선수가 되는데 구단이 지갑을 열지 않는 상황서 이들을 잡아 두기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선수들의 계약은 자신이 있건 없건 결정 날 문제라며 사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올시즌 트윈스의 부진은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예년처럼 마이너리그에서 좋은 선수가 올라오지 않은 가운데 론델 화이트 같이 저비용 노장 선수들로 전력의 공백을 메우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은 고스란히 그의 짐이 됐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전혀 좁혀지지 않자 그는 스트레스에 짓눌릴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절이 싫으면 떠날 수 밖에 없는 중'이 된 것입니다(구단 수석 자문역으로 남지만 예우 차원에 불과합니다).

▶빌리 빈

그러나 수틀린다고 해서 떠나는 게 과연 상책일까요. 그것이 자신을 옥죄는 스트레스가 되고 그래서 견딜 수 없는 염증을 불러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절이 싫어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견디고 투쟁해 성공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트윈스와 정 반대편에 있는 뉴욕 양키스의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입니다.

캐시먼은 지난 2005년 시즌을 마친 후 '무소불위'의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와 싸워(?) 값진 전리품을 얻어냈습니다. 재계약의 최우선 조건으로 스카우트 등 구단 전 부서에 걸쳐 모든 보고가 스타인브레너가 아닌 단장인 자신에게 제일 먼저 올라오도록 하는 보고 시스템의 개혁을 따낸 것입니다. 단장이란 이름에 걸맞게 구단 운영의 전권을 공식 위임받은 셈입니다.

그 결과 양키스는 올시즌 팜 시스템에서 올라온 루키들(자버 챔벌레인 이안 케네디 필 휴즈 등)과 3년차 왕치엔밍과 백업 요원들이었던 로빈슨 카노와 멜키 카브레라 등 신예들이 부상 당한 노장 선수들의 난 자리를 튼실이 메우며 전반기 43승43패의 부진에서 후반기 47승23패의 대약진을 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이는 캐시먼 단장이 명실상부한 단장으로 재계약하면서 내걸었던 3가지 목표(1.월드시리즈 우승 2.팜 시스템 정비 3.연봉 절감) 중 두 가지 결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의 양키스 모습은 데릭 지터 앤디 페티트 호르헤 포사다 마리아노 리베라 등 팜 시스템을 통해 키운 영건들로 기반을 다지고 옛 영광을 재현했던 90년대 초반 '르네상스 양키스'와 아주 흡사합니다.

인턴 사원으로 출발 1998년 불과 30세에 양키스 단장이 돼 집사 노릇만 하다가 7년만에 '만인지상의 주지' 스타인브레너를 상대로 승부수를 띄웠던 그가 불혹을 앞둔 39세에 그동안 수틀리는 것도 꾹 참고 투쟁해 마침내 2/3를 채운 '열정의 잔'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의 잔은 27번째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면 다 채워집니다.

수틀리면 박차고 떠나는 게 결코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샌디 앨더슨(현 샌디에이고 사장) 전 오클랜드단장의 예로도 알 수 있습니다.

야구는 생전 해 보지도 않았고 다트머스와 하버드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변호사보다 해병대 장교 출신임을 더 자랑스러워한 앨더슨은 1989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좀처럼 기회를 못 잡자 타격에 초점을 맞춰 팀을 바꾸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해병대 신병훈련소처럼 '모든 타자는 선두 타자처럼 행동해야 하고 홈런을 칠 힘을 길러야 한다'는 수칙을 세워 놓고 감독들을 향해서는 "팀의 4구 비율을 높이지 않으면 당신은 해고야"라고 윽박지르며 팜 시스템을 재정비해 나갔습니다. 4구가 투수가 아닌 타자의 책임이고 스몰 볼이 아닌 빅 볼을 주장하는 '머니 볼' 이론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의 말발이 먹히지 않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몰 볼'의 대부 토니 라루사 감독이 지휘하는 빅 리그였습니다.

또다시 신성불가침은 있을 수 없다는 해병대식 논리를 앞세운 그는 "도대체 어떤 조직이 그 운명을 중간 관리자에게 맡긴다는 말인가"라며 라루사를 깎아내리면서 일전을 불사합니다.

하지만 둘의 갈등은 바로 해결됩니다. 부동산업자들인 새 공동 구단주들이 긴축 재정으로 선수 보강을 취소하자 라루사가 세인트루이스로 떠나버린 것입니다.

이후 오클랜드는 단장의 말을 잘 따르는 중간 관리자가 덕아웃에 앉는 팀이 됐고 지금도 앨더슨이 발탁한 빌리 빈(1990년 스프링캠프서 마구잡이로 배트를 휘두르던 빈이 프런트로 전직을 희망했을 때 스카우트로 받아 준 사람이 당시 단장이었던 앨더슨이었습니다)이 단장으로 전권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절이 싫어서 중이 떠나는 이유엔 꼭 주지와의 마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열정과 소신으로 견디고 버티다 보면 앨더슨처럼 하늘이 도와주는 경우도 생기는 것입니다.

절을 떠나느냐 마느냐는 당사자인 중 그 자신의 선택입니다. 또한 그 선택에 우열은 있을 수 없습니다. 번민에 번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이기에 그렇습니다.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떠날 수 밖에 없다는 염증에 결코 주눅 들거나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정면으로 대거리 해 보겠다는 자세입니다.

곧 염증과 한복판에서 만나 싸우는 것입니다. 비단 야구 뿐만 아니라 어쩌면 삶과 심지어 일에서조차도 무료하고 권태스럽고 염증 투성이일 때가 흔하디 흔한 탓입니다.

염증에 헛 스윙을 하더라도 그래서 삼진 아웃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싸워 보는 게 어떨까요? 염증도 제3 스트라이크를 폭투로 던져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이 나올 수 있습니다.

미주중앙 구자겸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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