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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를 죽이면 교육이 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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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교육인적자원부가 오랜 숙원 사업인 외국어고 문제를 정면 돌파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외고가 대입용으로 변질했고, 교육효과도 없으며, 과열 입시 경쟁으로 중학생들의 사교육을 부추겨 중학교 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가는 주범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교육부 관계자는 외고가 일반고를 이류 학교로 차별화시켜 고교 평준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공립이든 사립이든 외고는 엄연히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규정돼 있고, 교육감의 설립인가를 받아 운영되는 학교다. 만약 위법하게 학교를 운영하면 당연히 폐쇄조치하거나, 행정제재를 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입학 자격이 없는 학생을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시키거나, 교육과정을 규정에 맞지 않게 운영하는 등 법령을 위반하면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외고가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전체 외고를 설립 목적이 다른 학교로 개편하거나 폐쇄하겠다는 것은 행정기관이 생각할 일이 아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적용 법규가 다른 특성화 고교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권한 남용이다.

특성화고는 소질·적성·능력이 유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정 분야 또는 현장실습 등 체험 위주로 교육을 실시해 기능인을 양성하는 직업교육 기관이다. 교육부 의도대로라면 외고를 영어·일본어 등 외국어 통역학교 등으로 개편해 관광객 통역원이나 안내원을 양성하겠다는 뜻인 것 같다.

외고의 과열 입시 경쟁이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는 교육부 주장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는 초등학생도 학원 가기 싫어 방학을 없앴으면 좋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세 살짜리도 영어학원에 다닌다. 외고를 없애면 과외가 없어지기는커녕 외고 수준의 교육을 받기 위해 사교육이 더 성행할 것이다. 교육부 주장대로라면 외고 지망생 이외의 학생은 과외를 받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고등학생들은 과외를 더 많이 한다. 대학입시 때문에 과외가 많으니까 대학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까 걱정이다.

교육부는 평준화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외고라고 진단했지만, 본질을 잘못 알고 있다. 문제는 외고가 아니라 평준화 자체에 있다. 국민들이 평준화에 만족하지 못해 외고를 찾는다면 평준화에 만족할 수 있는 교육제도를 만들어 외고를 인기 없게 만들든지, 아니면 외고에 준하는 교육체제를 만들어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교육부는 외고가 어학 영재를 양성할 생각은 안 하고 입시에만 매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공업, 농업, 수산, 해양, 과학, 예술, 체육, 국제 계열로 돼 있는 특수목적고 가운데 고교과정을 최종으로 생각하는 곳이 어디 있으며, 입시교육을 하지 않는 학교가 어디 있는가.

외고가 인기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제도 아래서 수준 높은 교육을 해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차제에 외고를 손대려면, 권위 있는 기관이 평가해 특목고 답지 않은 수준 이하의 일부 학교를 선별해 일반고로 전환하는 조치를 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그래야 고교 교육이 더욱 발전할 것이다. 한번 외고는 영원한 외고일 수 없다. 어떤 경우든 경쟁에서 뒤처지면 도태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속성이다.

이남정 교육선진화운동본부 공동대표 전 인천외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