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슈트 키드」의 문제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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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파라슈트 키드」. 글자대로는 낙하산 아이다. 낙하산에 달랑 매달려 이역만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떨어져 유학하는 한국 학생들의 미국 현지 신문은 「파라슈트 키드」라고 불렀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공부할 자세와 여건도 갖추지 않은채 유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넓은 천지에 팽개쳐진 이들 부유층 자녀들이 도박과 마약에 빠져들기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추세고,이런 부류의 유학생들에 대해 미국 언론도 경고를 했던 것이다.
도박과 유흥가에 빠져드는 한국 유학생문제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결국은 방치된 「무작정 유학」이 낳은 문제의 낙하산 유학생중 하나가 부모를 살해한 희대의 패륜아로 등장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이런 패륜아들이 미국의 어느 뒷골목에서 오늘도 유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마약과 도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희대의 패륜아를 만들어낸 1차적 책임이 무작정 유학에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사회의 도덕 불감증을 만들어내는 기본요인이 가정교육과 학교교육 전반에 걸친 문제에 있다고 본다면 이와 관련된 무작정 유학 또한 패륜아를 만들어내는 2차적 책임은 될 것이다.
부모 살해범 박한상군처럼 공부할 능력이 없는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하고 그들이 빠져나갈 활로를 어디서 찾느냐는 문제를 이젠 사회적 문제로 다시 부각시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유학을 떠나는 한국 학생수가 연간 2만5천명,1인당 최소 연간 유학경비를 1만5천달러로 추산하면 연간 약 4억달러를 미국유학에 뿌리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 유학생중 상당수가 우수한 인재로서 유학후 조국의 경제·과학발전을 위해 중대한 기여를 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문제는 공부할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유학이라는 형식으로 재교육의 기회를 줄 때 일어나는 부작용이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은밀히 암거래하듯 유학을 보내봤자 그 결과는 일탈과 방종의 재교육밖에 남는게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유학의 폐해 때문에 유학정책을 제한하거나 축소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학을 통한 재교육 기회는 확대하되 다만 그 방법이 보다 치밀한 정보와 개방된 전문기관의 주선에 따라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밀수하듯 쉬쉬하며 자녀유학을 보낼 것이 아니라 사전정보와 충분한 어학훈련을 거쳐 적응력을 키운 다음 유학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런 적응이 불가능하다면 유학을 포기하고 국내에서 스스로 살아갈 전문기술을 습득하게끔 부모가 유도하는 지혜를 보여야 한다. 무작정 유학과 도피성 유학이 낳은 「파라슈트 키드」가 더이상 등장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전체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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