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제2정화불사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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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계사 폭력사태는 날이 갈수록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는 폭력사태 그 자체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이번 사태로 하나씩 둘씩 그 내막이 드러나고 있는 종단 운영상의 뿌리깊은 비리의 전모를 밝혀내는 일과 조계종이 안고 있는 비리구조를 어떻게 뿌리뽑느냐가 더 크고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 동화사 전 재무국장이었던 스님의 폭로내용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신흥사·봉은사·보문사 폭력사태 등 주지자리를 둘러싼 잇따른 다툼을 통해 불교계의 타락을 짐작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나 그것이 폭로내용처럼 체계화되고,관행화되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주지임명이 돈거래와 연결돼 있다는 폭로내용이 사실이라면 문자 그대로 매관매직이다. 또 주고 받은 액수도 뇌물이 분명할 정도로 큰 것이다. 이런 거래가 전국 24개 본사는 물론,1천7백여개 말사의 주지임명 때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으로 가정한다면 거둬들인 금액은 어마어마한 규모가 될 것이다.
이런 비리의 구조와 풍토를 그냥 놔두고서는 총무원 집행부를 바꾼다고 해서 불교계의 모습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이번 기회에 썩은 곳을 말끔히 도려내고 비리가 생겨나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는 제2의 정화불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국의 수사가 조계사 폭력사태만이 아니라 그 구조적 비리의 전모를 캐는데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종교계의 일이라서 꺼리는 바가 있을지 모르나 폭로되고 있는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며,세속사의 그것과 구별될 수 없는 부정행위다.
아울러 상무대 건설업자가 낸 시주금 80억원이 92년의 대선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야당측 주장에 대해서도 진상을 가리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조계종단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종단과 정치권력의 유착을 끊는 일도 필수적인 조건의 하나이기 때문에 「증발자금」 문제도 명쾌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불교개혁의 열쇠는 종단 자체에 있다. 불교계 스스로가 비리의 근원을 없앨 수 있는 제도혁신에 나서야 한다. 전국 본·말사 주지의 임면권이 총무원장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 현재의 중앙집권식 운영방식은 고쳐져야 한다. 총무원장의 선거가 총무원장이 임명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일반 승려와 신도들의 의견이 종단의 재정운영·인사에 반영될 수 있는 방향의 제도개선이 개혁의 골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조계종단은 큰 어려움에 봉착했으나 크게 보면 해묵은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좋은 기회를 맞은 셈이기도 하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제2정화불사로 중흥의 길을 열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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