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영어교사 양성부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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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96년부터 학교장 재량에 따라 영어를 1주 2시간 정규수업으로 실시할 수 있다는 서울교육청 발표가 있었다. 또다시 영어 조기교육 찬반론이 나오게 되었다. 모국어교육에 정진해야 할 어린 나이에 외국어를 가르치면 나랏말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올 것이고,또 기왕 배울 바에야 어린 나이에 배워야 효과가 높다는 경험적 사례도 제시될 것이다.
그러나 영어 조기교육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런 소모적 찬반론을 떠나 이젠 보다 가치중립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영어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말하기에 앞서 중등학교의 영어교육은 제대로 되어 있는가부터 먼저 따져봐야 한다. 시대분위기가 세계화·국제화로 가고 있으니 영어를 잘 배우고 잘 가르쳐야 하는건 너무나 당연한 교육과제다. 그러나 이 막중한 과제를 현 교육체계가 제대로 수용치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 조기교육론이 계속 등장하게 된다.
중고 6년에서 대학까지 10년을 배워도 외국인과 제대로 의사소통마저 할 수 없으니 영어교육 전반에 걸친 회의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문제가 제기됐음에도 학교교육은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러니 영어는 어린 나이에 저절로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영어 조기교육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현행 중등학교의 영어교육방식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는게 더 급하다. 문법과 이해력 중심의 교육에서 대화와 생활중심의 영어로 교육체계를 바꿔야 한다.
바뀐 영어교육 내용에 따라 이를 가르칠 교사양성이 선행돼야 하고,그 다음 교재의 개발과 시청각 중심의 기자재 도입이 영어교육 개편작업의 순서가 돼야 할 것이다. 이런 모든 절차를 생략한채 조기교육만 하면 영어를 잘할 것이고,국제화에 부합되는 교육이 된다고 보는 정책입안자들의 생각은 너무나 안이하다. 잘못된 영어교육은 10년이면 족하지,13년으로 늘릴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는 외국어 조기교육은 빠를수록 좋고 모국어와의 균형있는 교육과정을 거친다면 서로가 상승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준비를 제대로 못갖춘 잘못된 조기교육이라면 오히려 실시하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국민학교에 영어 전담교사가 전무한 형편에 학부모 중심의 비전공자를 교사로 활용한다는 방식은 무책임한 결과를 낳지 않을지 걱정이다. 시간을 두고서라도 조기교육을 담당할 영어전문교사를 양성하는게 급선무라고 본다.
국제화·세계화시대에 필요한 영어교육을 하기 위해선 현행 중등학교의 영어교육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시도가 우선이고,그 다음이 국민학교 영어교육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일이다. 그것이 일의 순서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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