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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대가 교수 채용 못 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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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서울대 공대 교수 신규 채용에 40명이 지원했다 모두 탈락했다는 뉴스는 우연을 동반한 필연적 사건이다. 전기전자·에너지·기계·재료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7명을 뽑는 데 단 한 명도 통과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대학이 심한 경쟁사회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대학사회는 큰 전환기에 있다. 10년 전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구조조정과 국제화의 물결을 타고 대학의 눈높이가 매우 높아졌다. 이전엔 미국 등 선진국에서 학위만 따면 국내 유수 대학에 곧바로 채용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외국에서 일정 기간 교수직과 함께 학문적 업적을 쌓아야 국내 진입이 가능하다. 대학이 무한 경쟁 속에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서울 공대는 전원 탈락의 이유로 연구 성과와 능력 미흡을 들었다.

서울대 공대는 신규 교수요원으로 35세 미만의 우수 인재를 뽑으려 했다. 1970년대에 태어난 지원자의 약 80%가 본교 출신이다. 이들을 뽑는 교수들은 대개 70년대 학번이다. 이번 채용 불발은 결국 내가 가르친 학생을 내가 외면한 격이다. 공대 교수들은 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더 좋은 인재를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이라면 최선을 내다본 차선의 포기다.

더 나은 학교,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더 나은 인재를 뽑으려는 것은 당연하다. 교수들은 앞으로 채용 기준을 더 올릴 것이며, 차제에 좋은 사람을 낚아올 수 있게 대학 인사 시스템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들은 쓸 만한 사람을 찾느라 당분간 고생하겠지만 높은 기준을 갖고 있으면 10년 후엔 세계 선두그룹에 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머릿속 한편에선 이런 의문도 떠오른다. 교수 지원자들의 업적과 능력이 서울대 공대가 설정해 놓은 담을 넘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혹시 교수들이 숨은 인재를 못 찾았거나, 기존의 채용시스템을 관행적으로 적용하지는 않았을까. 예컨대 전공이 아주 세분화된 선진국과 학과 단위의 의식이 강한 국내 분위기에서 오는 차이 때문에 원하는 전문가를 찾기 어렵지 않았겠느냐 하는 점이다.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다.

또 여러 분야에 걸쳐 경험과 능력을 갖고 있는 인재, 이른바 컨버전스 인재가 외국에선 쓸모가 있었으나 국내에선 오히려 홀대받는 것은 아닌가. 대학의 기능은 연구와 교육이 양 축인데 연구 능력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교육 쪽에 능력 있는 인재가 등용되기 어려운 환경도 빼놓을 수 없다. 천재형 교수를 뽑아왔는데 강의 능력 부재로 대학도 후회하고 학생도 고생했던 경우가 많다.

교수사회 내부의 문제는 없는가. 교수회의의 과도한 민주화가 우수 인재 채용을 막는 일은 없는지, 교수가 과연 대학의 전략적인 매니지먼트를 담당할 인재로서 기능하고 있는지도 따져 봐야 한다. 국내 대학은 지금 교수 주권 시대에서 학생 주권 시대로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에 맞는 교수상은 무엇인지, 그런 인재를 뽑는 기준은 종전과 어떻게 달라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공대 장기 발전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같이 실행할 인재를 찾는다는 명확한 선발 규정은 있는가. 국립대의 경우 장차 독립행정법인 시대를 맞게 되는데 어떤 플랜을 짜고 있으며, 그런 시대에 대비한 인재 수급 전략은 있는지 등이 실은 교수 채용 때에도 제시돼야 하는 것이다.

이공계 기피와 이탈 현상은 우리 경제의 미래 성장 동력을 부식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원래 이공계 기피, 이탈 현상은 문명이 적이라고 했다.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자연히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문제는 선진국의 경우 대개 개인소득 2만 달러 수준에서 문제시되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6000달러부터 나타나 2만 달러를 바라보는 시점에선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더하다. 서울대 공대의 교수 채용 불발은 여러 각도에서 원인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곽재원 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