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정부 "내년 감세안, 선거와 무관" 강조했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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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減稅)와 연말 대통령 선거는 아무 관련이 없다."

2007년 세제개편안이 대선을 앞둔 선심용 정책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가 내놓은 해명이다. 그래도 증세 외길을 고수해 온 현 정부가 느닷없이 근로소득세를 1조560억원이나 깎아주자 아직 의아해하는 시각이 많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23일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감세정책은 참여정부 내내 지속해 왔다"며 의혹 진화에 나섰다. 재정경제부 허용석 세제실장은 "매년 공제를 늘려 (근로자에게) 1조~1조5000억원 정도의 세금을 깎아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4일 본지가 입수한 재경부 내부자료는 정부의 주장과 거리가 멀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근소세를 1조원 이상 깎아주는 세제개편안을 낸 건 2003년과 올해 딱 두 번뿐이었다. 2003년은 이듬해 4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있었고, 올해는 연말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총선.대선이 없는 해는 근소세 감면 규모가 미미했다. 일관되게 감세정책을 지속했다는 주장과 사뭇 다른 통계다.

◆선거 때는 듬뿍, 아니면 찔끔=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2003년 세제개편안은 종합부동산세를 골자로 한 부동산 세제 강화 방안이 들어갔다. 반면 봉급생활자를 위한 '당근' 정책도 포함됐다. 연봉 3000만원 이하 근로자의 세금을 많이 깎아줬다. 500만원이던 근로자 본인의 의료비 소득공제 한도도 없앴다. 이 조치로 근소세 1조3000억원을 깎아줬다. 세수가 줄자 정부는 이후 3년 동안 근소세 감면 제도를 줄였다. 2006년엔 2000억원이나 더 거뒀다. 연말 대선을 앞둔 올해는 다시 정책방향을 뒤집었다. 11년간 안 된다고 버티던 근소세 과표구간을 단번에 상향 조정했다. 2005년 깎았던 신용카드 공제한도까지 다시 올렸다. 한나라당 감세 공약의 김을 빼고 중산.서민층의 표를 겨냥한 조치가 아니냐는 논란이 고개를 드는 배경이다.

◆정부 씀씀이는 커져=기획예산처는 내년 예산안을 올해보다 최대 8% 늘어난 규모로 짜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 3년간 예산증가율 평균인 6.4%보다 높은 수치다. 세금을 깎아주면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경제원론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 예산처는 "내년에만 2조4000억원이 들어가는 기초노령연금제 등 대형 복지정책이 많아 불가피하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올해에만 1만4500명의 공무원이 늘고, 10월 초에는 대규모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포함한 남북 정상회담이 기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예산 감축 없이 세금만 깎아주면 재정 운영이 어려워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다음 정부에 큰 부담"=선거를 앞두고 세금을 깎아주고 지출을 늘렸다가 선거 후 다시 죄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후유증을 수습하기 위해 다음 정부의 부담은 커진다.

하지만 세제와 예산은 선거라는 정치 변수에 휘둘리기 쉽다. 현 정부도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2003년 세제개편의 큰 그림을 미리 그려놓는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올해 세제개편 과정에서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숭실대 이진순 교수는 "선심성 정책은 후유증을 낳게 마련"이라며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는 큰 제도 개편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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