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속 특사교환 묘수풀기/방한 갈루치 무슨 얘기 나눌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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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의 지연작전에 대비책 조율/미는 NPT 복귀·특별사찰 중점
북­미 고위급회담의 미국측 수석대표인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정치 군사담당 차관보의 이번 방한은 ▲남북대화 ▲21일 열리기로 예정돼있는 3단계 북­미 고위급회담 의제들을 한국정부 관계자들과 최종 조율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진다.
갈루치 차관보의 방한은 당초 미국의 대북접근 속도 등 3단계 회담의 의제를 중점 논의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남북한 특사교환이 난관에 봉착해 있어 한미가 대북정책을 전면 점검하는 성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는 남북 특사교환 협상이 지지부진해 21일로 예정된 3단계 회담의 성사여부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에 남북한 특사교환 문제부터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한 특사교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3단계 회담이 열릴 수 없다는 입장을 한미는 누차 밝혀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12일의 제6차 실무접촉에서 남북한이 특사교환에 극적으로 합의,21일 이전에 특사교환이 이뤄지고 3단계 회담이 속개될 수도 있지만 북한이 끝내 특사교환에 응하지 않을 경우 문제는 복잡해진다.
북한이 21일을 넘겨 특사를 교환하겠다고 나올 경우 과연 3단계 회담을 예정대로 개최할 것이냐하는 문제는 한미간에 사전 조율해야 할 대목이다.
북한은 순조로운 미국과의 대화를 위해 21일전 특사교환을 성사시킬 수도 있으나 지난 1일 예정되었던 실무접촉을 3일로 미루었던 것처럼 대화주도와 한미간의 이간전략으로 이를 늦출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그동안 북한핵문제 해결과정에서 미국과 물샐틈 없는 공조체제를 유지해왔다고 말하지만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받고 있는 현 시점에서 남북대화에 우리 만큼 비중을 둘지 의문이다.
한국정부로는 특사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북­미 3단계 회담이 열리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현 시점에서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으나 정부는 그동안 특사가 교환되어야 북­미 회담이 재개된다는 것이 한미간의 합의이고 북­미 회담에서도 합의되었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사교환이 늦춰지면 3단계 회담일자도 늦춰야 한다는게 우리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북한 핵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대화는 일정기간 유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일 수도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한국의 끈질긴 요구에도 특사교환을 북­미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문서화하지는 않았다.
이는 북한의 반대 때문이었던 것으로 해석되지만 남북대화보다는 핵사찰에 더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김영삼대통령과 한승주 외무장관은 11일 갈루치 차관보를 만나 그간 남북한 실무접촉의 경위를 설명하고 3단계 회담 이전에 특사교환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할 예정이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은 남북한 특사교환에 대한 한국입장을 완전히 수용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번 조율에서 어떤 견해차를 보일 것 같지는 않다』면서 『이번 협상에서는 특사교환이 이뤄져야 3단계 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재천명하고 3단계 회담의제 등에 대해 중점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3단계 회담의제와 관련해 한미 양국의 가장 큰 관심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내에 완전히 자리잡도록 유도하는 문제다.
북한은 NPT 탈퇴후 NPT 탈퇴를 유보한 「특수한 지위」를 강조하면서 IAEA 사찰을 한동안 거부해왔기 때문에 이 회담에서 북한을 NPT체제내에 완전히 복귀시키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이와함께 북한이 영변 미신고 핵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수용하도록 하는 방안도 다각도로 강구할 예정이다.
북한은 현재 자신의 NPT 복귀와 일반사찰 및 특별사찰 수용을 협상의 카드로 사용한다는 전략이어서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이같은 목표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당근」을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협상에서는 북한에 줄 당근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은 단계적으로 시차를 두고 대북관계개선에 응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북한을 적성국가나 테러국가에서 제외하는 문제로부터 외교관의 북한 외교관 접촉범위를 넓히는 수순을 밟아가다 대표부 교환설치·수교 등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전략이다.
이렇게 볼 때 3단계 회담에서 논의될 의제들중 어느 하나도 가벼운 것이 없어 회담이 열려도 순항은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갈루치 차관보 등 미국측 실무자들이 불과 한달전에 워싱턴에서 한승주 외무장관 등과 3단계 회담 의제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으면서도 다시 협의를 하는 것도 이 회담의 의제들이 만만치 않음을 반증한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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