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데뷔하는 백기완씨 차녀 美淡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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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재야인사 白基玩씨(61.통일문제연구소소장)의 둘째딸인 美淡씨가 아버지의 얘기속에 나오는 장산곶매를 그림으로 형상화해 화가데뷔전을 갖는다.
인사동 그림마당 민((734)9662)에서 25일부터 열리는백미담씨 개인전에는 매 그림만 50점이 소개된다.
『날개가 생겨먹은 품새를 기어이 말을 하잘 것 같으면 그것은어김없이 서슬퍼런 작두의 등을 돌려놓은 것같다.그런 날개를 한번 툭 쳐서 날아가잘 것 같으면 아득한 푸른 하늘을 제집 안방인양 단숨에 부여안곤 했다.또 그것으로다 적의 목두가지를 치잘것 같으면 보나마나 뎅겅 뎅겅 썩은 장작패듯 작살을 냈겠다.』걸걸한 입담을 통해 푸지게 이어지는 백기완씨의 매이야기는 전부터 운동권이나 미술계에 잘 알려진 얘기.미담씨도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노상 그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정식 그림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는 미담씨가 매 그림에 손을 댄 것은 지난90년.집안에서 모두 바라던 조카가 태어났을 때 흥에 겨워 그린 그림이 큰 매가 날개를 펴고 새끼들을 아우르는20호 크기의 먹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지난해 가을 아버지 백기완씨가 펴낸『장산곶매 이야기』의 삽화로 쓰였는데 이때 책을 꾸며준 사람들이 그림솜씨를 인정해주고 부추기는 바람에 내처 개인전까지 마련하게 됐다.
『발톱은 쇠갈고리같고 발은 갯바람에 절어 얽은 밧줄같다는등 하도 많이 들어서 장산곶매의 생김생김은 눈에 선해요.매를 그릴때는 어렸을 적 얘기들으면서 가슴 설던 것처럼 저절로 흥이 납니다.』 백씨는 깎아지른 벼랑위를 배회하는 모습,바위모서리에 걸터앉아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먹이를 향해 내리꽂이를 하거나 반공중에서 먹이를 나꿔채는 공중걸이모습등 이야기속에서 천변만화의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매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녀의 그림은 체계적인 미술공부를 했던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다소 세련된 멋은 덜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신화처럼 새겨진「용맹하면서도 슬기로운 장산곶매의 모습」을 전해주는데는 결코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거칠게 죽죽 그은 선과 다소 서툴러 보이는 먹 사용법에서 오히려 민화풍의 강하고 활달한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다.
서울여대 불문과 3학년때 시위사건으로 학교를 중퇴한뒤 한때 노동현장에 몸담기도 했던 그녀는『한동안 매 그림을 더 그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있는 의로운 새인 장산곶매의 전형을 그려보이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尹 哲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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