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어떻게 당 수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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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던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결국 이명박 후보의 신승(辛勝)으로 끝났다.

그동안 양측의 네거티브 공방과 갈등이 워낙 심했기 때문에 앞으로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별 탈 없이 잘 화합할 수 있을지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후보는 20일 후보수락 연설에서 "박근혜.홍준표.원희룡 세 분의 후보와 함께 정권교체의 길에 나설 것"이라며 "특히 박근혜 후보가 중심적 역할을 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 박 후보께서도 동의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저를 지지했건 지지하지 않았건 모두 하나가 되자"며 "저는 뺄셈의 정치가 아니라 덧셈의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도 "경선 패배를 인정한다.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며 "이 후보께서 반드시 정권교체에 성공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이 이대로 봉합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당초 이 후보 측은 박 후보 측이 꼼짝할 수 없게끔 10%포인트 이상의 확실한 압승을 희망했었다.

하지만 이날 경선의 표차는 1.5%포인트(2452표)로 기존 여론조사의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특히 박 후보는 선거인단 투표에선 432표를 앞서는 등 기염을 토했다. 이 때문에 박 후보 지지자 수십 명은 전당대회장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미리 유출됐다는 이유로 '경선 무효'를 외치며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박 후보가 선거인단 투표에서 앞섰다는 것은 박 후보가 적어도 당심(黨心)에선 이 후보에게 필적하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 당장은 박 후보가 깨끗한 경선 승복을 다짐했지만 앞으로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선 얼마든지 다른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2002년 민주당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상대 진영에서 후보교체론을 들고 나왔던 것 같은 상황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 후보도 본선 승리를 위해선 무엇보다 영남권의 확고한 지지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영남권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박 후보의 지원이 절실하다.

이 후보 캠프의 한 의원은 "일단 이 후보가 박 후보에게 선대위원장직을 제안하고 필요하면 양자 회동을 통해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가능성이 크지는 않겠지만 만약 박 후보 지지층이 '사보타주(태업)'를 일으켜 무당파층으로 돌아서면 경선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형준 캠프 대변인도 "이 후보가 겸손한 자세로 박 후보에게 다가가 설득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본선 승리를 위해선 무엇보다 당내 화합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 측이 박 후보 측 인사들을 선대위에 대거 등용하는 인사 탕평책을 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비관적 전망도 적잖다. 양측의 내면을 한 꺼풀 더 파헤쳐 보면 이 후보 측은 "영남표는 어차피 '집토끼'이니 박 후보 없이도 한나라당 지지가 확실하다"는 자신감이, 박 후보 측에선 "이 후보는 한두 달 뒤 여권의 네거티브 공세로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며 재기를 벼르고 있어 갈등이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여건이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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