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모범생 셰허의 대반란, 53, 5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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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준결승 제1국
[제3보 (41~59)]
白.朴永訓 5단 黑.謝 赫 5단

젊은 기사들은 도전적이다. 뜨겁고 사나운 이세돌9단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노인네가 울다 갈 정도로 신중한 젊은 고수도 많다. 셰허는 모범적인 바둑을 둔다. 인상에서도 신중함이 절절히 묻어난다. 박영훈도 정통파지만 셰허에 비하면 거칠고 파격적으로까지 보인다. 그 셰허가 41, 43으로 틀어막고 45로 뛰어 요소를 지킨다. 그림 같은 수순이다.

46으로 가로막자 47로 집을 지었는데 역시 모범적인 한수다. 이창호류인가. 번득이는 감각은 보이지 않는다. 밋밋하다. 그에 반해 박영훈이 둔 48의 모자는 활하다. 물기가 쫙 흐르는 수다.

우변을 지킨 49, 51도 절에 간 색시처럼 얌전하다. 중앙 백진이 너무 커져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흑의 다음 한수가 검토실에 모인 모든 프로의 의표를 찔렀다. 박영훈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순하기 짝이 없던 셰허가 53의 강력한 침투를 결행한 것이다. 이 수야말로 모범생 셰허의 내부에 어떤 사나움이 숨어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돌이켜 보면 셰허는 집을 다 지은 다음 푹 쳐들어갔다. 그의 순함은 계략이었다.

게다가 57은 더욱 놀라운 강수였다. 박영훈은 셰허의 돌연한 기습에 충격을 받은 눈치다. 58로 차단했으나 다음의 응징 수단이 쉽지 않다.'참고도' 백1로 둘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그러나 거칠게 그림을 그려봐도 12까지 백이 안 된다. 모범생의 대반란에 박영훈의 뜨거운 장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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