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상도동계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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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金泳三대통령이 黨政개편에서 上道洞系 또는 家臣그룹을 重用한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내무장관.청와대정무수석비서관.집권당 사무총장과 같은 자리는 대통령이 믿을 수 없거나 잘 모르는 사람을 앉히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자 리다.그리고대통령이 아니라 누구라도 人事란 자기가 아는 범위 안에서,자기가 感잡는 범위 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러나 이런불가피성을 이해하더라도 上道洞系의 重用은 대통령과 得勢한 上道洞人士들에게 모두 상당한 부담과 책 임을 지운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金대통령으로서는 사람 선택의 범위가 너무 좁지 않느냐는걱정을 듣게끔 됐다.대통령은 그나라 최고의 두뇌들로부터 보필받는 것이 바람직한데 人材선택의 범위가 좁으면 그만큼 국가적으로손해다. 원래 上道洞系니 東橋洞系니 하는 系派정치는 보수야당의특징으로 이제와서는 낡은 개념이 되고 있다.언제적 上道洞인데 아직도 上道洞만 찾느냐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바로 얼마전까지도 陸士출신.TK출신들의 人脈형성과 과잉得勢가 큰 폐단을 일으키고 말썽거리가 된 것을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비유컨대 구멍가게 시절의 유능한 助力者가 대기업이 된 후에도 곧 유능한 경영자일 수 있을까 하는문제다.上道洞사람들이 黨內정치.민주화투쟁.대통령만들기까지의 과정에서 나름대로 기여하고 능력을 발휘한 것은 사 실이지만 국가경영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그런 점에서 이번에 重用된 上道洞系人士들은 맡은 직책의 훌륭한 수행을 통해 능력을 실증해 보여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金대통령으로서도 起用 후의 능력평가에 있어서는 家臣.公臣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지금 實勢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능력이 있으면 實勢고,능력이 없으면 失勢다.능력은 대통령과의 인연이나 親疎관계에서 나온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또 한가지 생각할 일은이번 人事에서 보게되는 기준의 문제다.이번에 보면 上道洞系에 적용된 기준은 확실히 후한 편이었는데 앞으로 다른 政派나 일반사람에게도 최소한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가령 子女부정입학 관련 直系를 入閣 시켰으니 그 정도의 허물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그걸 이유로 公職의 길을 막을 수는 없을것이다.또 선거에서 후보를 매수했던 家臣을 사면했으니 비슷한 정도의 다른 犯法者도 용서하는 게 마땅하다.그래야 공평하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는 옛날부터 자기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관대해야 한다는 倫理관념이 있다.對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말이 그것이다.그렇다면 家臣에게 적용한 기준보다는 다소 더 후하게 다른사람을 대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얘기가 된다.
이번 人事를 두고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지금 국가적 현실이 내편 네편을 따지고,너와 나 사이의 벽을 높여서는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지금 우리에겐 할 일이 산더미 같고 모조리 국민의 힘을 모으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가령 쌀시장개방후의 농촌 대책이나 사회기간시설의 시급한 확충문제,더 늦출 수 없는 교육.환경.과학기술투자…,이 모든 일들이 다 국민의 납득.인내.희생이 있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이젠 大國이다.
4천2백만명의 인구에 한해 GNP가 3천억달러나 된다.우리가걱정하는 농촌 대책도 국민 합의만 있으면 3천억달러중 2백억달러쯤 뚝떼어 몇년간 쏟아부으면 해결 못할리 없다.도로.항만.공항등 사 회기간시설도 국민 생각만 일치하면 연간 1백억달러고,2백억달러고 투입하면 머잖아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도 있다.
문제는 국민 합의고, 국민의 힘을 한 방향으로 몰아갈 大和解.大和合의 바탕 조성이다.
上道洞系 또는 釜山.慶南출신의 得勢가 혹시라도 국민의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이런 절실한 命題에 어긋나게 작용해서는 안될 것이다.이 점은 上道洞사람들 자신이 누구보다 깊이 인식할 필요가있다고 보며 그런 인식은 國政수행에서 나타나야 한다.국가적 현실은 날이 갈수록 정부가 더 넓은 국민의 지지기반 위에서,더 넓은 공감대 위에서 정책을 추진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內閣.비서실.黨에 布陣한 直系중심의 측근 정치로 간다면 문제가 심각하다.오히려 直系들은 오랜 신뢰를 바 탕으로 대통령에게 直言하고言路를 확대하는 것이 참된 보좌가 될 것이다.
이제는 내편 네편의「편」이 문제가 아니라「일」과「능력」이 문제다.다른 사람을 묵사발로 만들면서 함께 新韓國을 건설하자고 해봐야 헛일이다.이미 능력이 있다하여 3,4共 사람을 쓴 이상능력있는 사람이면 5,6共 人士도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그리고 이제는 집권에 이르기까지의 얽히고 설킨 정치적 恩怨관계도털어버리는 문제를 고려할만 하다고 본다.
며칠 후면 새해다.새해엔 자기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관대한 정치,서로 갈려 힘을 相殺.消盡하는 정치가 아니라 힘을 모으는 정치로 국가의 大運을 열어나가야 겠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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