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쇄신이 필요한 때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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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이야말로 국정쇄신이 필요한 때다. 지금 정부는 기구도 즐비하고 사람도 많아 분주히 돌아가는 것 같으나 실제로 일하는 체제는 아니다. 지난 실명제 때도 국정운용의 여러 쟁점들이 드러나더니 이번 우루과이라운드(UR)와 쌀 대응에서 그것이 다시 확인됐다. 정부내의 팀플레이가 안된다는 것,종합전략을 짜고 국정을 한 방향으로 끌고 갈 중심축이 없다는 것,따라서 나랏일이 임기응변식으로 처리된다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쌀시장 개방 결정후 뒤늦은 인책론이 나오고 있으나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몇사람의 개인적 잘못에 겹쳐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정부시스팀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시스팀은 개발독재시대의 그것으로서 영명하고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만 작동하게 돼있다. 위로부터의 지시가 없으면 「복지부동」 상태에서 들어간다. 또 부처할거주의와 관료의 무사안일에 편리하게 되어 있다.
이번 UR 협상과정에서 보았듯 대외통상교섭도 기획원·외무부·상공자원부·재무부·농림수산부·체신부 등 업무별로 담당될뿐 이들을 통괄조정하는 역할이 없다. 나라 전체의 국익을 계산하여 줄 것은 주고,받을 것은 받는 종합전략이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국무총리·경제담당 부총리·청와대 경제수석·각 장관들이 있지만 누가 책임지고 정부부처를 지휘하여 UR 대책을 준비하고,협상하고,또 협상결과를 내정화하는 것인지 모호한 상태다. UR외에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장기계획과 일관성있는 추진이 어렵다. 대통령의 국정방침을 받아 그것을 실제로 정책화하는 시스팀이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것이다.
나랏일을 하는데 있어 정부의 각 기구가 각기 역할을 맡아 일을 창의적으로 처리하는 제도도,관행도 안되어 있다. 위의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고 위로만 위로만 미루어 결국 대통령이 사과를 하는 사태가 된 것이다. 따라서 민주화·국제화시대에 맞는 정부조직과 운용관행을 빨리 만들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사람도 큰 문제다. 각자 책임을 맡은 사람이 과연 제대로 일을 했느냐 하는 점이다. 위의 지시만 기다리는 소극적 자세를 취했든,당초 식견과 경험이 없어 뭘해야 할지도 몰랐든간에 새 정부팀이 후한 점수는 못받는 것 같다. 청와대 보좌진이나 국무위원·정부기관 모두 비슷비슷하다. 특히 경제팀을 비롯한 내각이 더하다. 앞으로 UR 후속조처를 위해선 대대적 국정 구조개혁이 필요한데 과연 그것을 감당할만한 능력·기백과 국민적 신뢰성이 있느냐를 잘 평가해야 할 것이다. 또 현 팀들도 많이 지쳐있는 것 같다.
국정쇄신에 대한 단안은 빠를수록 좋다.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어 빨리 내년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엉거주춤한 상태로 가기엔 내년은 너무 할 일이 많다. 또 답답해하는 국민들에게도 일진청풍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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