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제1부 불타는 바다 어머니,어머니(55)요 며칠 무슨 사가 끼어도 제대로 끼었나 보다.끌려가서 맞지를 않나.요시코를 두고,그러다가 큰 코 다친다는 소리를 듣지 않나.순간 섬뜩하게 가슴에 와 짚이는 생각이 있었다.
지상은 천천히 일어났다.
그렇구나.그럴 수도 있겠구나.오카다가 나를 때린건 단순히 편지 때문이 아니다.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편지 때문이라면 내용을 한 줄씩 짚어가면서 조목조목 따졌을 사람이다.그러나오카다는 그렇게 하지 않았었다.
편지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 되었다든가,무슨 기밀사항을 적었다든가 그런 말이 없었다.그는 오히려 조선놈,반도놈 해 가면서 지상을 모욕하려는데 더 열을 올렸었다.
그렇구나.그가 모를 리가 없다.지상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기분이었다.장씨가 내게 와서까지 말을 할 정도라면 알만한 조선사람은 다 수군거리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그것을 공원들의 동태 관리가 주임무인 오카다가 몰랐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조선사람들 모르게 조선사람의 편지를 까서 읽어 주고,움직임을 보고하는 또 다른 조선징용공들까지 있는 마당에,나와요시코가 가깝게 지낸다는 말이 그들의 귀에 들어갔을 건,손바닥보듯 너무나 뻔한 일이다.식사시간이 끝났음을 알 리는 종소리가울리고 있었다.지상은 뛰듯이 숙사앞 마당을 가로질러 나가,공장으로 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장씨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옆 사람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걸어가고 있는 장씨의 모습이 보였다.지상은 사람들의 몸을 밀치며 장씨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장씨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저씨,저 잠깐만 좀 보세요.』 『누가 숨 넘어가나? 몬 일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지상이 물었다.
『좀 전에 하신 그 얘기는,무슨 소립니까?』 『무신 소리?』『일본 가시나 뭐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헤헤… 야가 모 해딱하니 눈이 뒤지빗구나.』 눈알을 디룩거리며 지상의 아래위를 훑듯이 바라보고 난 장씨가 내뱉듯이 말했다.
『잊어 부리라.벨 것도 아니구마.니 뱃속에 든 말이믄 니가 내보다 더 잘 알기고,안 그렇다카믄 아닌기고… 그런거 아니가.
사나이가 사람덜 입에 오르내리서야 쓰나.그래서 해 본 소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