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석만 떠는 핵투기대책(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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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러시아의 동해에서의 핵쓰레기 투기를 두고 최근 국내에서 보이고 있는 일련의 반응들은 우리 정부나 국회를 비롯,각계 각층이 얼마나 여러가지 면에서 허술한가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이미 예고돼 왔던 사실을 두고 그동안 큰 관심이나 대비책도 없이 지내다 뜻밖의 사건이라도 터진듯이 모두가 허둥대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동해에서의 핵쓰레기 투기는 지난 3월 러시아정부가 「방사능 폐기물의 해양투기와 관련된 문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과거 30여년간 갖가지 핵폐기물을 버려온 사실을 밝히면서 당시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쟁점으로 부각됐었다. 이에 따라 정부당국은 러시아정부에 자제를 요청하고 양국이 공동으로 오염실태를 조사하기로 합의,전문가 회의를 갖기도 했다. 또 북한을 비롯해 주변국가들과의 공조체제를 제안하고 핵폐기물 투기해역에 조사선을 보내는 등의 대응조처를 취했다.
정부당국의 당시 1차적인 대응은 나무랄데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후의 정부 태도였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안이했다는 점이 이번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러시아의 핵쓰레기 해양투기가 국제문화하자 옐친 대통령의 환경문제 보좌관은 앞으로도 계속 동해에 버리게 될 것이라고 공언한바 있다.
그렇다면 당시 정부는 의당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두는 것이 마땅했을 것이다. 단순히 공동조사단을 구성한다든가 몇몇 주변국가의 공조체제 제안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러시아정부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국제적인 여론환기를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이제와서 적극적으로 교섭하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이미 그때 중대한 문제로 제기했어야 마땅하다.
또 당시 정부는 조사선을 파견해 오염실태를 조사한뒤 크게 우려할 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바 있다. 방사능 폐기물의 해양투기와 관련된 런던협약 기준대로라면 거의 폐해가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핵관리가 위험할 정도로 엉성하다는 것은 세상이 모두 아는 일이다. 또 이 문제에 관한한 이미 30여년간 몰래 핵쓰레기를 버려온 사실 때문에 그 발표의 신빙성에도 의문이 따른다. 그래도 동해 핵투기가 계속될 경우 무해한 것인지,어느쪽 의견이 옳은지 국민으로서는 불안하기만 하다. 이에 대한 정부 당국의 명확한 설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러시아는 일단 예정됐던 2차 투기를 중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러시아 당국자는 「우선 6개월간은 보관이 가능하지만 해결되지 않으면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하 핵쓰레기 처리장소 마련이 불가능한 러시아의 처지로 봐선 결국 또 버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예고된 일을 두고 나중에 법석을 부리지 않기 위해 정부는 이번 기회에 단호한 대책과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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