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갈등 푼 「흑과 백」/노벨평화상 받은 남아공 두 지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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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내년 사상 첫 「색깔없는 선거」 합의/28년간 감옥서 지낸 흑인대부/만델라/차별정책 개혁한 백인 대통령/데클레르크
올해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의장과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지난 48년 백인들의 국민당이 인종차별 정책을 내걸고 집권한 이래 계속된 남아공의 악명높은 흑백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실질적으로 종식하는 계기를 마련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최근 남아공에서는 흑인우월주의 단체들이 흑인을 공격하는 활동을 강화,거의 매일 유혈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내년 4월27일 남아공 사상 최초의 평등선거 실시 이후에도 흑백간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어서 이번에는 두사람의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은 남아공의 분쟁을 조속히 종식하려는 국제사회의 염원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만델라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남아공 흑인 한 부족의 족장가문 출신인 그는 흑인 인권변호사·아마추어 권투선수·게릴라·정치범으로 오래전부터 흑인들 사이에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내년 선거가 실시되면 차기대통령으로 가장 유력시된다.
만델라는 지난 6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알베르트 루실리 전 ANC의장에 이어 ANC 지도자로선 두번째,지난 84년 수상한 데즈먼드 투투주교를 포함하면 아프리카인으로선 세번째로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1918년 남아공의 현 트랜스케이 흑인 거주지 수도인 움타타에서 대호사족의 일파인 템부족 족장가문에서 태어났다. 포트 하레대 재학시절부터 흑인 인권운동을 시작,1940년 국외추방됐으며 그뒤 요하네스버그로 이주해 광산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통신수업으로 법학을 공부,학위를 땄다.
1944년 ANC청년연맹을 창설하고 52년부터 그의 오랜 친구 올리버 탐보와 함께 남아공 최초의 흑인 변호사가 됐다. 이해 그는 ANC 부의장으로 선출됐으며 처음 정치범으로 체포돼 9개월간의 연금생활과 정치활동금지형을 받았다.
55년 만델라는 흑백 인 종차별이 없는 남아공 청사진이 담긴 이른바 「자유헌장」을 선포한 인민의회를 주도했으며 이듬해 반역혐의로 투옥됐다. 60년까지 계속된 재판끝에 풀려난 그는 ANC의 군사기구인 MK에 투신해 활동하다가 62년 체포돼 종신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82년 국제사회에서 만델라 석방을 요구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이 벌어졌으며 그는 90년 데 클레르크 대통령의 지시로 석방됐다. 석방 당시 그는 국제사회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이후 국가원수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으며 세계 각국을 여행,남아공의 인종차별 종식노력에 대한 지원을 모색하기도 했다.
만델라는 87년부터 감옥에 있으면서 백인 정부와 비밀협상을 시작,석방된 직후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공식회담을 갖고 흑백간 유혈충돌을 종식하기로 합의했으며 ANC는 30여년에 걸친 무력투쟁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다.
두 사람이 마련한 흑백간 협상은 그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진전을 보아 지난 6월3일 내년 4월27일 최초의 흑백인 차별없는 총선을 실시키로 합의,남아공에 실질적인 인종차별 종식이 가능하게 됐다.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지난 89년 당시 매우 강경하던 보타대통령을 뒤이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보수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졌던,이른바 「아프리카너」로 불리는 전형적인 만아공 토착백인이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2월 흑인에 대한 차별을 규정하는 모든 제도와 법률을 폐지하고 만델라를 석방하는 등 과감한 정치개혁에 착수,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의 개혁조치는 남아공에 대해 전면적인 경제제재를 가해오던 나라들에 인정을 받아 남아공에 대한 제재는 거의 모두 해제된 상태다.
그가 정치개혁에 착수한 이래 남아공에서는 오히려 흑백간,흑인과 흑인간 인종 갈등이 오히려 격화돼 1만1천명 이상이 숨지는 등 그는 일부로부터 유혈충돌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아니면 남아공의 인종차별은 종식의 계기를 마련하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그의 공로는 높이 평가받고 있다. 데 클레르크는 내년 총선에서 흑인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흑인들이 백인을 통치하도록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해 왔다.<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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