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 숙청·정치보복 가능성/하스불라토프­루추코이 어떻게 처리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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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무력점거 지휘 드러날땐 중형/옐친 「초헌법 조치」도 일단논란
러시아 보수파지도자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최고회의(의회) 해산조치에 맞서 싸우다 체포된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최고회의 의장과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전 부통령 등에 대한 앞으로의 처리과정에 주목된다.
이와 관련,드미트리 루리코프 옐친 대통령보좌관은 4일 이들은 구금상태에서 신문을 받은후 사법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과 함께 체포된 알베르트 마카쇼프장군,블라디슬아프 아찰로프(최고회의 지명 국방장관),안드레이 두나예프(동 내무장관),빅토르 바라니코프(동 보안장관) 등도 사법처리 대상에 올라 있다.
특히 지난 3일 모스크바 시청사와 방송국의 무력점거를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마카쇼프는 중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혈사태를 몰고온 계기가 된 옐친의 최고회의 해산 또한 「쿠데타적」 초헌법적 조치였기 때문에 과연 이들을 징벌할 권한이 옐친에게 주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설령 옐친이 칼자루를 휘두른다 해도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또 이들에 대한 처벌이 향후 옐친의 정치일정 진행에 중요한 요건이 되는 지방 지도자들의 지질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섣불리 처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스불라토프는 정부군에 체포되기 직전 지난 3일의 반옐친 시위대의 TV센터 공격을 지시한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단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루츠코이도 그가 권총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옐친은 이들의 신병문제와 관련,이들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겠다고 유럽공동체(EC)측에 확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체포되기 직전 취재중인 기자들을 통해 신변안전이 보장되면 아무런 조건없이 항복하겠다는 말한바 있다.
그러나 세르게이 필라토프 대통령실 행정실장은 무장봉기를 조직하는데 관여한 최고회의 의원의 검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옐친은 공산주의자들 단체의 활동을 금지시키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이번 사태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과 정치적 보복 가능성을 예고했다.<한경환기자>
◎옐친을 선택한 미국의 입장/신외교정책과 일치… 강경보수파 등장 우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무력으로 러시아 보수파를 제압한 모스크바의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이 옐친에 대해 잇따라 확고한 지지를 표명한 것은 옐친을 제외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에서 같은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국민은 나에게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했을 것』이라고 언급,옐친의 강경무력행사에 대해 동조를 표시했다.
미국이 옐친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옐친이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모두 미국 국익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옐친의 승리만이 냉전종식후 경제적·정치적 홍역을 치르고 있는 다른 전공산주의 국가들에게 지금까지의 세계질서 개편방향을 거슬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미국의 견해다. 미국은 현재로서는 러시아에서 보수공산세력이 재등장할 것으로 보지 않으나 하슬불라토프­루츠코이의 보수진영이 더이상 러시아 정국을 혼미하게 끌어갈 경우 냉전종식 이후 어느 정도 정착돼가고 있는 신국제질서에 새로운 파탄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러시아에 넘어간 15억달러의 장차 상환문제 등 부채향방에도 미국이 외면할 수 없는 입장이다.
군사적으로는 구 소련권에 산재한 핵무기에 대한 통제와 특히 러시아에 남아있는 핵무기의 해체가 걸려있어 러시아 강경보수파의 등장보다는 옐친이 미국의 러시아 핵무기통제에 훨씬 쉬운 인물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유엔연설을 통해 이른바 「확대전략」을 공표,세계 각국에서 민주주의가 억압되는 경우 미국은 경제제재 등 강경조치를 불사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클린턴대통령이 옐친을 지지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미국의 최신 외교정책과도 일치하고 있다.<워싱턴=진창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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