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 3년의 교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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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90년 독일통일은 비단 독일민족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장대하고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당시 통독은 독일민족의 대화합,냉전의 종식,평화롭고 풍요로운 세계를 약속해 주는 상징으로서 국제적인 축복속에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꼭 3년이 지난 이제 통일은 그러한 이상을 형상화한 드러마라기 보다 고통과 시련도 따르는 냉엄한 현실로 진행되고 있다.
비록 끊임없이 경제·문화적인 교류와 인적왕래를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반세기 가까운 동서독의 이질적인 사회체제는 완전한 의미에서의 통일에 작지않은 장애가 되고 있다. 통일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문제들이 사회 모든 부문에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독과정에서 제기돼온 문제들은 대부분 동서독의 경제격차에 따른 통합의 어려움,이질적인 사회제도에 적응하기 어려운 옛 동독 주민들의 고통 등에 집중돼 왔다. 낙후된 동독지역의 산업기반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투자,경쟁력을 잃어버린 동독지역 산업의 파산에 따른 경제기반의 궤멸,동서독지역의 소득격차,실업자의 급증에 따른 사회문제 등등이 대두됐다. 거기에 사실상 흡수통합에 따라 서독의 행정·사법제도까지 한꺼번에 이식되면서 많은 혼란과 고통이 뒤따르고 있다.
동독지역 국민들은 당초 기대했던 것처럼 서독과 같은 생활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공산체제에서 누리던 갖가지 사회보장혜택이 없어진데 대해 불만이 쌓이고 있다. 서독지역 사람들은 그들대로 통일에 따른 비용부담으로 세금이 오르고 사회보장 헤택이 줄어드는데 대해 불평하고 있다. 심한 경우는 동독주민들은 자신들을 2등국민이라니,서독의 식민지라는 등의 자조적인 표현을 쓰기도 할만큼 상대적인 박탈감에 젖어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독일사람들은 지난 3년간의 경험으로 반세기 가까운 분단시절에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질성을 깨닫고 거리감을 갖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아주 다른 세계에서 살아 왔다는 사실이 확연해진 것이다. 30년의 베를린장벽을 제거하고 나니 그보다 더 헐기 어려운 심리적 장벽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이에따라 현재 독일에서는 3년전 불가피하게 보였던 통일과정을 점진적으로 진행시켰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통일은 국가체제나 제도만의 통일이 아니라 인간 상호간의 통합,서로가 신뢰하고 친근감을 갖는 내적인 통일에 더 많은 배려를 했어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물론 통일자체는 분단민족에게 최고선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더욱 이상적이다. 우리로서도 크게 유념해야 할 귀중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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