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책 「독단결정」 안된다”/김 대통령에 보내는 원로들의 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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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모든 일 너무 낙관하는건 아닌지/김수환추기경/「양과 파리떼」 함께 사는 지혜 필요/김상협 전 총리
최근 「과거보다는 미래에 관심갖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김수환추기경과 김상협 전 국무총리가 각각 21,22일 나라의 장래설계차원에서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고언과 충고를 잇따라 제시해 주목된다.
김 추기경은 한국발전연구원(이사장 안무혁의원·민자) 초청강연회에서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주요 정책을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모든 의견과 비판을 수렴,국민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총리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 총동창회(회장 김영광의원·민자)초청 강연을 통해 『변화와 개혁은 즉흥적인 한풀이나 살풀이가 아닌 사람과 돈,인재와 경제를 아끼는 것이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제헌의회 윤재욱옹 등도 22일 추석을 앞두고 제헌동지회관을 찾은 황명수 민자당 사무총장에게 『요즘 여론을 들으면 국회나 당은 눈치만 보고 김 대통령만 1인 정치를 하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김 추기경은 「개혁의 계속적인 성공을 위해」 주로 비판적인 시각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저 먼저 개혁정책 결정과정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즉 『개혁을 주도하는 이는 대통령과 소수의 측근에 불과해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는 「대통령 지배」(Presidentocracy)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며 개혁정책이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집약·수렴하지 못하고 독단적으로 결정·집행되고 있음을 꼬집었다.
그는 특히 참모들의 직언을 들을 줄 아는 대통령과 대통령의 지시에 반대할 수 있는 장관들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함께 김영삼정부가 혹시 매사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고 보다 진지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실명제나 개혁에 대해서 사람들이 왜 걱정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진지하게 헤아려 보고 신속·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지금은 결코 국민 절대다수가 지지하는 것으로 과신,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줄로 알아서는 안된다.』 『분명히 뜻이 있는 국민은 개혁을 지지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이들은 개혁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염려한다. 이들은 대통령이나 그 측근이 너무 자신만만하며 중대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리고 있어 결국 국민 불안이 고조되고 경제가 위축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그는 또 『개혁은 결코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돈을 밝혀내고 처벌하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닌만큼 정부도,사회도 개혁의 대상이 되는 분들을 전과자 취급하지말고 함께 사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포용력을 높이도록 촉구했다.
추기경은 기득권층에 대해서도 변화를 요구했다. 그는 『실명제로 타격을 입은 이들은 마음상한 나머지 대통령과 힘겨루기라도 하듯 「누가 이기나 두고보자」고 버티고 있다면,또 그래서 엄청난 액수의 돈이 돌지 않고 있다면 실명제는 실패하고 이어서 개혁이 실패하고,따라서 대통령이 실패할 수 밖에 없겠지만,그것은 결국 나라가 실패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김 전 총리는 김 대통령에게 『전임 대통령의 공적을 계승하고 실정·과오는 과감히 시정해나가는 온고지신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김 대통령의 재임기간은 가장 짧으므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한치의 시행착오도 없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국정지표를 구체화한 「5년 집권시간표」를 마련해 수시로 점검·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 대통령이 이제부터는 정치우등생만이 아닌 경제우등생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그는 『변화와 개혁이 「너도 죽고 나도 죽는」 단세포적인 방식이 아닌 「너도 살고 나도 사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회복불가능한 「최후의 심판」을 서두르지 말고 남북통일의 도래를 앞두고 필요시 꼭 활용해야 할 귀중한 「인재와 경제」를 아끼고 또 아껴야 한다』며 국력소모 방지를 역설했다. 과격한 단 한번의 「일망타진」에만 기대하지 말고 번거롭지만 수차에 걸쳐 「일벌백계」를 거듭하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총리는 양떼가 해를 당할까봐 파리퇴치용 살충제 사용을 하지 않는 호주의 「양과 파리떼의 공존」 예를 들며 『자유시장 경제와 「파리떼」들은 당분간 공존공생시키는 엉뚱한 지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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