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YS가 밝혀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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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영삼(YS)전 대통령이 재임시절인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에게 선거비용으로 9백40억원을 직접 줬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직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천문학적 액수의 부당한 돈을 직접 전달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姜의원이 증언한 것을 그의 변호인이 밝혔으니, 사실상 姜의원이 진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른바 '안풍(안기부 예산의 총선 전용)사건'의 검찰 수사가 정말 중요한 대목을 빠뜨린 채 진행된 셈이다.

여러 측면에서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우선 돈을 주고 받은 정황이 그렇다. 姜의원이 청와대에 들어가 당무보고를 끝내면 YS가 "가져와봐"라고 했고, 지갑을 내밀면 1억원짜리 수표다발로 수십억원에서 2백억원까지 넣어주었다는 것이다. "姜의원이 '죽더라도 밝힐 수 없다'며 의리를 지켜야 할 사람이 YS밖에 더 있겠느냐"는 변호인의 설명도 그럴듯하다. 95년 지방선거 때도 YS가 당에 2백57억원을 전했다고 한다.

대통령 취임 직후 "정치자금을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했던 YS가 아닌가. 그랬던 그가 뒷전에서 이런 식으로 돈을 썼다면 국민을 우롱한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수천억원대 통치비자금을 밝혀내 '역사 바로세우기'를 한다던 장본인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이 보도가 나온 뒤의 YS의 반응은 실망스럽다. 상도동 측은 "안풍은 DJ정권의 YS에 대한 정치적 보복사건"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기자들의 상도동 자택 접근도 봉쇄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은 도대체 1천2백억원에 이르는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제 金전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고해성사를 할 차례다. 언제까지 측근들의 의리에 기대어 역사적 진실 규명을 외면할 것인가. 전직 대통령다운 당당한 처신을 해주기 바란다. 검찰도 지금까지의 수사를 고수하려 하지 말고 이 돈이 안기부 예산을 전용한 것인지, 대선 잔금이나 당선 축하금을 안기부 계좌를 통해 세탁한 것인지 당장 재수사해 밝히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