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암을 알자 암을 쫓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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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문명의 이기들 중 암을 일으키는 요소도 적지 않은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다.
자동차 배기 가스는 발암 물질 집합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연료가 연소되면서 나오는 질소산화물·탄화수소 등에는 발암성을 가진 것이 숱하게 들어 있으며 그 밖의 발암 요소가 적지 않다.
성균관대 약대 이병무 교수는 『발암성 방향족 탄화수소 중 대표적인 것이 벤조에이피렌』이라고 지적했다. 이 물질은 세포의 유전자에 붙어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암 세포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자에 붙어>
미국 연구에 따르면 연료 1갤런이 연소될 때 승용차는 최고 1백70㎍(1백만 분의 1g), 가솔린 트럭은 5백㎍, 디젤 엔진을 쓰는 트럭이나 버스는 60㎍ 정도의 벤조에이피렌을 만들어 방출한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 각국의 환경 규제와 기술 개발로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연간 수십∼수백톤 규모의 벤조에이피렌이 자동차 꽁무니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교수는 『벤조에이피렌은 불과 몇 ㎍이라도 늘 들여 마실 경우 폐암·간암·위암·방광암·식도암·위암·설암·뇌암·피부암 등 무수히 많은 암을 일으킨다고 밝히고 『이는 독성이 밝혀진 발암 물질 중 가장 강력한 몇 개에 속한다』고 강조했다.
암의 최대 원인으로 꼽히는 흡연이 암에 걸릴 확률을 10배정도 높이는데 비해 벤조에이피렌은 1백배나 높인다는 것. 비록 공기 중에 희석돼 마시는 양은 적을 수 있으나 그 독성은 엄청나다는 말이다.
그는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먼지 입자에 잘 달라붙는다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대기 중에 그냥 퍼져나갈 경우는 엄청난 비율로 희석돼 피해가 줄지만 먼지에 대량 흡착될 경우는 비교적 높은 농도로 인체에 쉽게 들어간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들어간 다음에는 먼지와 함께 조직에 달라붙어 오랫동안 발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타르·분진 섞여>
또한 먼지와 함께 날아다니면서 물이나 식품도 오염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복잡한 도로 근처에 고인 물에서 높은 농도의 벤조에이피렌이 검출됐다는 미국 연구 보고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정문식 교수는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 전체 벤조에이피렌 중 자동차로 인한 것은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굴뚝을 통해 대기 중으로 희석되는 산업체의 대기 배출물과는 달리 인체 가까운 곳에서 배출되기 때문에 인체에 흡입될 가능성은 더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 중에는 엄청나게 희석돼 있어 측정이 힘들 정도지만 나오는 것은 분명한 만큼 배출을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미국 연구 보고에 따르면 복잡한 도로변에 거주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몇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자동차의 발암 물질이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주변 공기와 희석되기 쉽고 달리는 차들이 대개 완전 연소를 하는 고속도로변 거주자는 불완전 연소 차량이 많은 도시 거주인 보다는 물론 일방 평균보다 마시는 벤조에이피렌의 양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양대 의대 김윤신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터널 속에도 많은 종류의 발암 물질이 고여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 배기 가스에서 나오는 발암 물질은 벤조에이피렌을 비롯한 방향족 탄화수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물질이 뒤섞인 유기성 타르 물질도 발암성을 가지며 배기 가스 속의 분진도 폐포에까지 달라붙어 폐를 상하게 하는 것은 물론 암까지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자동차 브레이크 라이닝의 재료로 쓰는 석면으로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조금씩 석면 가루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남원 교수는 『브레이크 라이닝에서 나오는 석면 가루는 폐에 들어가 폐암과 상피종이라는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브레이크 라이닝을 분해·정비하는 작업장의 석면 농도를 조사한 결과 위험한 수준의 석면 먼지가 날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선진국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브레이크 라이닝에 석면을 쓰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우리나라도 얼마 전부터 규제에 들어갔다.

<저공해 차 절실>
최근 선진국들은 자동차 업체에 전기·수소·태양열·알콜차 등 무(저)공해 차량을 의무적으로 개발토록 하고 있다. 기술 없는 나라로부터 환경을 이용한 무역 장벽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발암 물질과 그 위험성을 그만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의 건강은 물론 환경 무역 장벽 돌파를 위해서라도 발암 물질 배출이 적은 차를 개발토록 국가·기업·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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