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물」,무슨 돈으로 하나(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부는 오는 97년까지 5년동안 모두 15조4천여억원을 투자해 상수원의 수질을 개선해 전국민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22일 발표했다. 정부는 이 기간중 4대강에 하수처리장·축산폐수처리장 등을 완비해 하수처리율을 지금의 두배로 높여 전국의 상수원 수질을 최소한 2급수 이내로 개선한다는 등 원대한 수질개선 사업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거창하고 희망적인 수질개선 계획을 접하면서 우리가 갖는 솔직한 심정은 부푼 기대보다는 그 청사진의 실현성에 대한 또하나의 의구심이다. 이번이 도대체 몇번째인가. 헤아릴 수 없을만큰 수질개선을 위한 사업계획이 과거에도 여러차례 정부에 의해 발표됐고,대문짝만한 활자로 신문의 머리를 장식해 왔던 것이다.
전국의 하천과 강이 각종 공장폐수와 축사오물·생활하수·농약 등에 의해 오염돼 썩어가고 있다는 진단은 20여년전부터 오늘까지 수시로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관계당국에선 오염물질 배출의 규제를 강화한다느니,상수원 수질보전을 강화한다느니,전국토의 절반을 청정지역으로 지정한다느니 별의별 방안과 대책이 발표되곤 했다.
심지어 4대강 수질개선 종합대책은 90년 이후만 해도 두차례나 수정 발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어떤가. 92년판 환경백서에 나타난 4대강의 오염도만 봐도 개선은 커녕 악화 일로에 있으며,특히 영산강의 수질은 생화학적 산소요구량을 기준한 오염도가 5.6으로 최악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팔당호와 대청호 등 상수원의 수질도 겨우 2∼3급수의 한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이처럼 정부 수질개선 계획의 잇따른 발표와 수질악화 현실이 제각각 따로 겉돌고 있는 것은 환경처의 환경개선 의지가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예산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92회계연도 예산만 봐도 환경관련 예산은 전년도에 비해 70% 정도 줄었으며,특히 시급한 당면과제인 수질보전 예산은 무려 95%가 깎였다. 물론 지방자치제의 본격적인 실시로 하수처리장 건설이나 하천정화사업 등이 지방양여금 사업으로 전환된 데도 이유는 있겠으나 부족한 지방재정의 운용이 환경사업에 우선순위를 보장해줄리 만무한 것이다.
우리는 정부의 이번 수질개선 종합대책이 환경처 단독의 계획이 아니고 경제기획원을 비롯한 관련부처와 상공회의소 등 민간위원들이 총망라된 환경보전위원회에서 결정한 사업이라는,종래와는 다른 면이 있음을 안다. 따라서 재원마련 방법으로 세제·금융 및 정부재정의 융통성있는 운용을 일단 기대하고 싶다. 15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의 정부사업이 그 재원염출 방안을 구체적으로 세우고,실천계획을 세부적으로 마련하지 않음으로써 맑은 물에 대한 국민의 희망과 기대를 또한번 공염불로 날려버리지 않기만을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