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반응, 심드렁 … 차분 … 7년 전과 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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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전자상가를 찾은 시민이 8일 오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28일 평양에서 열린다는 정부 발표를 전하는 TV 뉴스를 보고 있다. [사진=박종근 기자]


2000년 4월 10일 청와대가 "두 달 후인 6월 12~14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전후 첫 정상회담을 한다"고 발표하자 한국은 들썩였다. 1997년 찾아온 외환위기는 어느 정도 치유됐고, 98년 초부터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반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외환위기 탈출에 성공한 김대중 정부의 지속적인 햇볕정책은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남북 정상회담 성사'는 대북 정책의 결실로 여겨졌다. 대선을 2년 이상 남겨 놓은 상황이어서 정치적 이용에 대한 의심의 시선도 거의 없었다.

언론 보도를 봐도 당시 분위기를 쉽게 읽을 수 있다. '통일로 가는 큰 걸음' '백두에서 한라까지 평화의 빛' 등 당시 신문들의 제목들은 온통 장밋빛이었다. 심지어는 '김정일 신드롬'까지 일었다. 독선적인 독재자로만 생각됐던 김 위원장이 실은 호탕한 성격과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것이 신드롬의 내용이었다. 김 위원장의 재평가를 수용할 정도로 사회 분위기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7년 후 2차 남북 정상회담 소식이 전해진 8일 시민들의 반응은 차분했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발표 때의 감흥은 찾기 힘들었다. 그동안 남북 관계가 어느 정도 진척돼 왔고, 북핵 사태 이후 북한이 6자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데다 정상회담 소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예전처럼 흥분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시민들은 남북 관계의 발전을 기대하면서도 대선을 앞둔 시기에 전격적으로 발표됐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다. 자칫 이벤트성 회담으로 진행돼 '퍼주기' 논란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장소(평양)도 상대(김정일 위원장)도 바뀌지 않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왜 가라앉아 있을까. 성균관대 김성주(정치외교) 교수는 "7년 전에는 정권에 대한 지지도 컸고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국민의 기대도 높은 상태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현 정권에 대한 실망이 크고 보수적 성향도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임현진(사회학) 교수는 "환영은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돼 당혹스럽다"며 "대선을 앞두고 있어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납북자 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1차 정상회담 후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보내줬는데 납북자 생사 확인을 아직도 못했다. 이번 역시 이벤트성 행사가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어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생사 확인 및 귀환이 의제로 포함되지 않는 한 2차 정상회담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탈북자동지회 이해영 사무국장도 "임기가 몇 달 안 남은 대통령이 실질적인 정상회담으로 이끌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평가했다.

강인식.송지혜 기자<kangis@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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